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갖는 느낌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이 작가는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 썼구나' 가 하나이고, '이 작가는 책을 쓰고 싶어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구나.' 가 다른 하나이다. 사실 그건 작가 본인 밖에 모른다. 작가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그 소설을 썼지만 읽는 사람은 그런 느낌을 못받을 수 있고, 반대로 예를 들어 어느 문학지 등에 써주기로 약속을 해놓았기에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읽는 사람은 마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양 푹 빠져들어 읽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 저것 작가의 전략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어야 그 작품을 좋아하고 그 작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치지 않는 비'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오래된 팝송이 있었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라고, 노래의 제목도 이것이고 노래의 첫 가사도 이렇다. 여기서 raindrop은 단순히 빗방울이 아니라 인생의 고난, 역경을 뜻한다고, 그때 중학생이던 나는 교육방송 서승현 강사의 노래 해설을 들으며 뭔가 내가 모르는 세계로 한발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린다는, 이 책의 제목도 저 노래의 제목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짐작하며 읽기 시작했다. 일단, 260여쪽 되는 소설의 거의 대부분 비가 내린다. 진짜 비 말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해버린 주인공이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책의 맨 끝에 나온다. 가는 여정에서 우연히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 소설의 줄기는 그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면서 여행이 이어지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난 사람들 자체가 큰 의미를 던지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들에 의해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 방식,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만난 사람들을 보면, (괄호 안은 만난 장소. 작은 따옴표 속의 이름은 그들의 별칭)

1. 노숙인 (공원)

2. 전직의사라는 노래하는 신사 (대형마트 입구)

3. 우산을 건네준 할머니 '미세스 산타클로스' (패스트푸드점)

4. 목사 '케세라세라' (교회)

5. 상담소장 '마스코트 인형' (청소년상담소)

6. 광대 (지하철역 앞)

7. 초등학교 동창 '19번' (동창 사는 동네)

8. 도서관 서기였다가 짤렸다는 남자 '대장' (밤기차)

9. 시한부 선고 받은 20대 여자 '판다' (밤기차)

정리하려고 한것이 아니라 읽다 보면 이런 리스트가 머리 속에 그려지면서 작가 역시 이런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지면을 채워나갔나보다 상상을 하게 된다. 작가의 글솜씨에서 보이는 능숙함,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내공은, 이렇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성때문에 가려지고 말았다.

더 치명적인 것은 처음부터 여행을 같이 떠나는, 아니 여행이나 가자고 제안은 형이 먼저 했다, 이 형의 정체를 읽기 시작한지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나에게 다 들켜버렸다는 것이다. 치졸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긴장감, 궁금증, 흥미는 반으로 팍 떨어지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으냐.

'이 작가는 이 이야기가 정말 쓰고 싶었구나' 가 아니라, '이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특히 청소년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설을 한편 쓰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만들었구나'의 카테고리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작가의 홈페이지도 찾아가 보았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글 쓰는 것을 참 사랑하는 사람, 오래 오래 글을 쓸 것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큰 상으로 시작했으니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해본다.

제3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작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3-02-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님 명절 잘 보내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3-02-08 18:48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 여기 저기 아플 일만 생기는 것 같아 울적해지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자신을 챙기기로 해요. 우리가 마냥 긴장 풀고 있지 않도록 몸이 가끔씩 보내는 경고 사인이라고 생각하면 좀 나을까요? 며칠 전에 누가 저보고 머리 염색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안했다고 했더니 염색 안해도 흰머리가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워해요. 저는 한번도 그것에 대해 고마와 하기는 커녕 생각해본 적도 없거든요.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살면서 잃기 전에는 고마운 줄 모르는 것, 건강도 그런 것 같지요. 애티커스님 서재에서 며칠 전에 건강이 안좋으셨다는 글 읽고 댓글은 따로 안남겼지만 저도 마음이 안좋았더랬어요. 저도 별로 꿋꿋하고 강단있는 사람이 못되니 그냥 공감하는 정도 밖에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더라고요.
책 많이 읽으시고 예전처럼 영화나 TV드라마 평도 자주 올려주세요.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안녕미미앤 2013-02-22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으면서 갖는 두가지 느낌. '이 작가는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 썼구나' 와, '이 작가는 책을 쓰고 싶어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구나.'... 완전 동감해요! *^^*

hnine 2013-02-23 12:45   좋아요 0 | URL
두가지로 분류하는게 좀 단순하긴 하지만 제 경우엔 그렇더라고요. 작가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는 느낌이 나는 책에서는 더욱 특별한 감동을 느끼게 되고, 작가에 대해서도 더 궁금해지고 그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고, 그러던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