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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한번 들자 멈추기가 어려웠다. <체스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점점 알싸해진다고 해야하나, 인간의 어떤 행동, 결과가 발생하기까지 내면에서 작용했을 인간 심리의 또 한면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으면서는 마음 속 울음을 울어야했다.
슈테판 츠바이크.
이름은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한번도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해서 이 책을 골라들었는지 모른다. 순전히 직관이다 많은 경우 그렇듯이.
체스는 혼자서 둘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바둑이나 장기가 그렇듯이, 보통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두게 되어 있다. 이 작품에도 두 사람의 체스 플레이어가 나오는데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그 한 사람은 체스의 세계적인 거장 첸토비치. 그는 어려서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는데 열 네살이 될때까지 글자를 읽는 것도 셈을 하는 것도 서툴기만 하고 성격도 괴팍한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체스에만은 놀랄 정도의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후로 그의 인생은 체스로 일관되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거장이 된 그가 체스 경기를 위해 미국에서 아르헨티나로 가던 중 배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 작품에서 이름도 없이 B박사라고 나오는 이 사람은 25년 동안 한번도 체스를 두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체스의 거장 첸토비치와 다른 이의 체스경기를 지켜보던 중 놀라운 예견력으로 훈수를 두다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이 B박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체스를 두어본 적도 없이 체스 경기를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페이지 많은 부분이 이 사람이 그 내력을 설명하는 것에 할애되어 있는, 일종의 액자소설 형식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그 당시 역사, 정치, 사회, 인간 내면 탐구에 대한 작가의 모든 사상이 결집되어 있는 듯 했다. 책을 다 읽고 뒤의 해설을 읽어보니 첸토비치와 B박사가 상징하는 것은 내가 느낀 것 외에도, 파고 들면 들수록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1941년, 작가가 아내와 동반자살 하기 1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한다.
<체스이야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뒤따라 나오는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작품은 약간 신파조의 제목때문에 앞 작품 만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정말 끝까지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 로 시작하는 편지가 어느 날 유명 소설가 R에게 전달된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없는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아마 아이가 죽지 않았더라면 자기도 죽을 결심을 하지 않았을지 모르고,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오랜 세월 혼자 안고 살던 사실을 굳이 편지를 써서 남자에게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1분도 걸리지 않았을 시간, 우연한 순간에 앞집에 사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소녀는 그 이후로 그 남자만을 사랑하며 산다. 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것 처럼 그 남자로부터도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마음 졸이고 온갖 방법을 시도하는 그런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이 아니라, 마치 동양적인 짝사랑마냥 혼자 마음 속에서 키워가는 사랑이다. 몇번의 시도도 하긴 하지만 남자에게 그 표현은 그 남자 주위의 많은 여자들이 해오던 것 중 하나에 지나지 않고, 많은 다른 여자들에게 대하듯이 매혹적이고 애정이 담긴 매너로 여자를 대하며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제발 자기를 알아주기를 고대하던 그녀는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숙하여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까지 오로지 그 소설가 생각만 한다. 아무도 모르게 그의 아이까지 나아 키우며 수년이 흐르고, 다시 그 소설가를 만나게 되지만 그는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처음에 그랬듯이 자기에게 접근해오는 어느 여자에게 하듯이 깍듯하고 매혹적으로 대한다. 오히려 소설가의 하인은 여자를 알아보는데 소설가는 끝까지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절망한 여자는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그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기를 고수하며 그의 분신인 아이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고 의지하며 살아 오는 그녀에게 아이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었다. 살아야할 이유를 잃었다.
어쩌면 이야기 줄거리 자체는 특별하지 않을지 모르나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를 어찌나 잘 묘사했는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자의 심정에 푹 빠져들게 한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어디 빙산의 일각에 비유할까. 빙산보다 더 크고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인간도 모르는 인간의 심리는 극한 상황에 이르기 전까진 알 수가 없다. 절대적인 고립 상황 ('체스이야기') 혹은 절대적인 사랑 ('낯선 여인의 편지')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 소설가가 보여준다. 소설을 읽는 이유이고 재미라 할 수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다는 작가가 이렇게 인간의 내면 심리를 파고드는 이야기에 뛰어난 것은 아마 그때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그 역시 보통이 아닌 상황으로 몰아갔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쓰고 보니 '절대적인 사랑'도 인간의 극한 상황이라고 보는 것 맞나? 내가 쓰고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