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실제로 글을 쓰는 일과 땅을 일구는 일과 바느질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정직하고 나지막한 자세로 엎드려 세상의 섭리를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산물을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작가와 농부와 바느질하는 여인은 닮아 있지요. (169쪽)

 

나희덕 시인이 장석남 시인에게 보낸 편지글중 마지막, 서른번째 글 일부이다. 마지막 한 페이지를 남겨 놓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가장 정직하였는가? 나지막한 자세였는가?

글 쓰는 일, 땅을 일구는 일, 바느질 하는 일. 모두 무언가를 짓는 일이다. 지어내는 아픔이 있을 것이고 지어내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초등학교때부터 방학이 되면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같은 집에는 살지 않아도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사시던 외할머니께도 편지를 썼던 게 2학년때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편지쓸 대상을 찾아 그당시 어린이 잡지 뒤에 나오는 펜팔 친구 주소를 보고 모르는 아이와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것도 성에 안차 매일 학교에서 보는 친구임에도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나와 동년배. 잘 알려진 시인이라는 것을 떠나서라도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정제되고 정갈한 언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는 일은.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하나 존대말을 쓰며 감정의 지나침 없이, 과장 없이, 보고 느낀 것을 한 단계 내려 적어 보내는 일이란.

 

웃음이란 단순한 가벼움이 아니라 많은 것을 비워 낸 뒤에 싹트는 표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나희덕,14쪽)

 

거지의 짐이 많고 성자의 짐은 없는 이치 (장석남, 19쪽)

 

어느 편지의 마지막 인사를 "그 마음 잔잔하소서" (121쪽)라고 마친 이유는 결코 한시도 잔잔할 수 없는 시인의 마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을거다. 이렇게 서로를 알아주는 사이란 꼭 부부일 필요도 없고 붙어다니는 단짝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더 오래 갈 수도, 기약없이 끊어질 수도 있다.

 

위에 인용한 말처럼 '성자'가 되려고 그러는지, 요즘은 책을 다 보기가 무섭게 옆에 쌓아두지 않고 내 손을 떠나보내는데, 이 책은 다 읽고난 지금 몹시 망설여진다. 또 봐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이런 글을 주고 받을 사람이 그리울 때, 이 책이라도 다시 읽어 갈증을 달래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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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6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읽은 책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아요.
거지의 삶! 훌훌~ 그게 안 되는 성격인지.ㅎㅎ
이 책도 참 마음에 들어요, 나인님^^

hnine 2012-09-16 23:22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요. 시인들은 이렇게 산문 마저 잘 쓰는구나, 감탄하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