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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괜찮으세요? - 32명의 3학년 아이들과, 한 마리의 토끼, 한 명의 노총각 선생님이 벌이는 우당탕 리얼 교실 스토리
필립 던 지음 / 사이 / 2011년 8월
평점 :
재미있다 이책.
작년 여름에 나온 책인데 요전에 읽은 '톨스토이와 행복한 하루'처럼 신간평가단 하느라 골라놓았다가 선정이 되지 않아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책 중 하나이다. 원제는 '3학년 아이들 32명과 토끼 한 마리 (32 third graders and one class bunny)'. 이 책의 저자인 Done선생님이 가르치는 3학년은 학생이 32명, 그리고 반에서 키우는 토끼가 한 마리이기 때문에 붙인 제목인데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는 우리 말 번역본 제목도 나쁘지 않다. 장난이란 장난은 다 쳐놓고는, 곤경에 빠진 선생님을 걱정해준답시고 하는 아이들의 말, "선생님, 괜찮으세요?"
주위에서 보면 직업의 종류를 막론하고, 그 직업에 어울린다 싶은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그 직업을 어떻게 봐주느냐 보다, 본인이 그 직업을 얼마나 즐겁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은 평생을 천국에서 살 수도 있고 지옥에서 지낼 수도 있다는데 저자는 정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 책 어느 쪽을 들춰 읽어도 느껴졌다.
3학년 담임만 20년. (미국에서는 한 선생님이 한 학년을 계속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거중 어느 1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1부 새학년 새학기, 2부 가을, 3부 겨울, 4부 봄, 5부 3학년 마지막. 이렇게 다섯 부로 나뉘어 담아놓았다. 읽으며 몇 번이나 혼자 킬킬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재미있고, 아이들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선생님의 방식도 재미있다.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웃음을 부르는 것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우리 언니가 <작은 아씨들>을 읽고 있어요. 그 책이 몇 페이지인지 아세요? 백 페이지도 넘어요!”
케빈: 저는 나중에 크면 중국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나: 왜?
케빈: 거기가 세계의 장난감 도시잖아요.
나: 그게 무슨 뜻이니?
케빈: 제 장난감에는 전부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거든요.
아론: 던 선생님, 저는 이제 마음을 착하게 고쳐먹고 <사람새>가 될 거예요.
나: 그럴 땐 <새사람>이 된다고 해야 하는 거야.
웃기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꾸미지 않는다. 자기들이 재미있으니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그냥 웃고 말 수 없는 게 선생님이고 집에서는 부모인데 그 과정이 순조로울 리 없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늘 되돌아보고, 가르치는 더 나은 방법이 없었을까 생각한다.
342쪽의 ‘내가 아이들에게 이걸 가르쳤던가’ 에 보면 선생님의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젯밤에 숙제를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내가 그들에게 가르쳤던가?
게임을 할 때 친구에게 “넌 안 돼.”라고 말하는 대신 함께하도록 끼워주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가?
문장 속에 답이 나와 있지 않을 때 생각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가?
많이 웃되 남들의 실수를 비웃지말며, 누군가의 이름이 자기와 다르고 조금 이상하다고 해서 웃지 말라는 얘기를 내가 그들에게 해주었던가?
정말 중요한 것은 지식보다 상상력이라는 것을 내가 그들에게 가르쳤던가?
토머스 에디슨이 했던 실험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실패였다는 사실을 내가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던가?
네 명이 공동 작업을 할 때 빨간 펜이 두 개 밖에 없는데 모두 빨간 펜을 원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가?
배움은 평생 계속하는 것이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내 불어 숙제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던가?
OECD국가중 우리 나라 학생들의 행복지수가 꼴찌라고 한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초등학생때부터 벌써 학교가는 것이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는데, 지나친 경쟁, 할줄 아는 것은 뭐든 급수나 자격으로 검증해보여야 하고, 못하는 학생은 잘하는 학생보다 관심을 못 받는 풍토 등이 원인이 아닐까 한다. 잘 하는 학생이 더 관심받고 칭찬 받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칭찬은 몰라도 최소한 관심과 배려는, 잘하는 학생보다는 못하는 학생들에게 몇 배 더 주어지는 것이 내가 아는 외국의 초등학교 분위기이다.
가끔 영재아들은 현장 학습을 간다. 미술관에 가기도 하고 콘서트를 보거나 보트 여행을 하는 날도 있다. 그럼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어떤가? 영재아가 교실에서 나갈 때 남겨진 아이들의 얼굴을 당신이 보았으면 한다. 선생님들이 일 년 내내 그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똑똑하고 재능 있고 멋진 아이들인지 강조하며 자부심을 키워준 것이 그 순간 모두 엉망이 되어버린다. 남겨진 아이들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미안하구나, 조니, 너는 학교에서 다른 누구보다 높이 뛰고 빨리 뛸수 있지만 읽기가 좀 서툴러서 너는 영재가 아니란다.”
“미안하다, 베키야. 너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팽의 곡을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지만 큰 수를 읽는 게 좀 안 되어서 영재가 아니란다.”
“미안해, 알렉시스. 너는 선생님인 나보다 열 배쯤 그림을 잘 그리고 너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인데 수많은 문제들 중에 한 문제를 틀려서 너는 영재가 아니란다.” (67쪽)
내가 받은 위로인양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늘도 아이를 다그치고 재촉하고 스트레스만 주지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