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삼십 - 서른에 이르는 사소한 이야기들
김상 지음 / 반얀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잡스럽게 좋아하는 건 많지만 딱히 잘하는 건 없는 사람.

섬마을의 산비탈에서 촌스러움을 미덕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책 표지에 있는 저자 소개 전문이다.

김상. 이름마저도 어딘지 예명 느낌이 나는 저자 소개가 너무하지 않나? 이렇게 괜찮은 책을 세상에 내놓고서는.

‘삼십’이 들어간 제목의 책, 또는 소재로 한 책들이 한 두 권이 아니기에 이 책도 큰 기대 안하고 지나칠 뻔 했다, 프롤로그를 펼쳐 읽어보기 전 까지.

...살짜쿵 잠에 빠질 뻔했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중략)

잠깐 쑥스러운 듯 망설이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했던 얼굴이기도 했다. 그가 대답했다.

 

 

서른입니다.

 

 

아,

오셨군요.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단편들이 주루룩, 이 자그마한 책의 280여 쪽을 채우고 있다. 사소한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사소한 이야기를 이렇게 매력있게 풀어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사소하지 않은 것.

 

봄이었다. 따뜻했고. 모르는 척, 바람이 불었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꼭 미지근한 물이 되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벚나무가 너울대는 도로를 내달리면 미지근한 물인 내게 미지근한 물인 바람이 스며들었다. (56쪽)

이런 표현. 모르는 척, 내가 아닌 남 얘기인척하고 하는 표현들. 단편 ‘봄, 밤’의 첫문장이다.

‘구름 같은 날들’의 첫 문장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삶이라는 건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다. (162쪽)

지루해서 시작했던 일들도 조금씩 지루해져가고 있다. (160쪽)

삼십이라는 나이를 말하는 것일까? 지루해서 시작했던 일들도 조금씩 지루해져가는 나이라고.

 

숨은 흘러 방안 가득 쌓여서

잠든 나를 곰곰이 내려 보는데

좋지도

싫지도 않은 채로

밤은 지나간다. (216쪽)

프롤로그만한 에필로그이다.

281쪽에서는, 내 생각을 내가 썼다고 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요즘 너무 외롭다”

순간 나는 웃을 뻔 했다. 니가 뭔데 감히 외롭니, 라고 말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애의 표정이 정말 외로워보였기 때문에 웃지도 않고 감히 외로워한다고 타박을 주지도 않기로 했다....우리는 잠깐 아무말도 표정도 없이 각자의 외로움에 몰두했다. 문득 버스에 있는 사람들이 다 외로워보였다. 갑자기 나도 외로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외로움이라는 건 되게 빈번한 감정이구나. 그러고 나니 조금 덜 외로워졌다. 그러나 다시 곧 외로워졌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롭고 때때로 안 외로운 것 같은데 왜 늘 기본에서 벗어나려고 발악을 하는 걸까. 못해도 기본인데. 이런 안이한 생각. 열심히 산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러는지도 모르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했는데. 인간은 노력해봤자 외롭다.

 

제일 좋았던 단편은 128쪽 ‘우리들의 타자연습’과, 위의 글이 속한 ‘외롭기엔 너무 외로운’.

 

삼십. 다시 돌아올리 없고 그러길 바라지도 않는 삼십.

한참을 지나왔는데도 이책에 99.99% 공감하는구나. 마음은 아리기만 하구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2-08-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을 하거나 '마음'을 기울이는 법을 잃거나 놓치는 바람에, '외로움'을 뺀 다른 생각이나 마음을 거의 못 느끼지 않느냐 싶기도 해요.

hnine 2012-08-03 09:52   좋아요 0 | URL
음...생각이 게으른 틈을 타서 외로움이 자리한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럴 때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