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밥상 - 농부 시인의 흙냄새 물씬 나는 정직한 인생 이야기
서정홍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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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게 넘치는 세상. 그래서 골라 먹게 되고 때로는 먹는 것을 일부러 자제하기도 해야하는 세상.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을 보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떤 중요한 사실이 일깨워지는 기분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한 알의 쌀이 이렇게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이론적으로 모르지 않겠지만 그것을 얼마나 오래동안 떠올리지 않으며 살아왔는지. 그 생각으로 우선 부끄러웠다. 그동안 나의 밥상은 부끄러운 밥상이었던 셈이다.

나는 저자 서정홍을 동시를 쓰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소개를 보니 시인 앞에 한 마디가 더 붙어 있다 '농부 시인'. 원래 생명공동체운동, 우리밀 살리기 운동,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2005년에는 도시에서 하던 이런 활동들을 모두 후배에게 물려주고 산기슭 작은 산골 마을로 들어가 직접 흙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서 그가 느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그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 한마디로 말해보자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시골에는 젊은 농부들은 없고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쉬셔야 할 연세의 노인들만 남아서 농사를 짓는 곳이 많다고 한다. 흙에다 땀 뿌리며 온몸으로 해야하는 농사 없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책으로, 머리로 깨우치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겠으나 직접 몸으로 겪으며 깨우치고 '실천'할 각오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농사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부터가 큰 가르침이 아닐지. 노인들만 남다시피한 마을에서, 그나마 노쇠하여 그중 한분이 돌아가시는 날의 쓸쓸함, 농부는 이 시대의 성직이라는 그의 말이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다. 갈수록 사람들이 농부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돈이 안 되기'때문이다. 돈 되는 것에만 너도 나도 달려들지, 중요한 일에 달려들지 않는다.

그는 농부만큼 자유롭고 행복한 직업은 없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 애써 구두를 닦거나 비싼 옷을 입고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농부는 하늘만 믿고 살기 때문에 하늘한테만 잘 보이면 되는 것이다. (200쪽)

슬픔을 잊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이라고, 부지런히 일하다 보면 어지간한 슬픔 따위는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하니, 우리는 농사를 통해 먹거리만 얻는 것은 아닌가보다.

건강하다는 것,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일로 여기는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의 어떤 노고가 이 한알의 쌀 속에 들어가 있는지. 밥상을 대할 때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강하지만 조용하고 다듬어진 목소리로 전달하는 모든 페이지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빠르게 넘어간다. 밥상을 차리거나 대할 때 부끄러움에 대해 떠올릴 수 있게 하는데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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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7-05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홍 님은 '집안일'과 '아이키우기'를 많이 맡아서 하던 '노동자'였다가 '시인'이 되었고, 이제는 노동자를 그만두고 '흙일꾼'으로 살아가며 시를 쓰는 시골 아저씨가 되었답니다. 다른 도시 노동자들도 시인 아저씨처럼 흙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홀가분하게 시를 쓰며 삶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hnine 2012-07-05 05:57   좋아요 0 | URL
'나락 속의 우주'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쌀 한 톨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요즘 많이 아쉽지요. 직접 내 땅에서 내 손으로 내 먹거리를 키워본다는 것은, 작정하고 시골로 내려가지 않더라도 꼭 해볼만한 일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밥상 앞에서, 잠들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서, 부끄럽지 않고 정직한 마음, 경건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삶을 꾸리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2-07-0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을거리 풍부한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까다롭게 고르고 따져서 먹어야하는
의무가 생긴 것 같아요. 풍요 속의 빈곤,은 먹을거리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인님이 별 다섯을 준 책이라니, 무한신뢰가 갑니다. 담아갈게요^^

hnine 2012-07-05 14:01   좋아요 0 | URL
이분의 정직하고 흙냄새, 사람냄새 나는 시들을 좋아했었어요. 그런데 이분의 에세이도 그 시를 꼭 닮았더라고요.
결국 사람은 자연의 품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실천에 옮겼더군요. 생각과 실천의 거리가 멀기만 한 보통 사람들에 비해, 본인은 부인하더라도 보통 사람은 아닌것 같아요.
귀농학교도 여신다는데 한번 참여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블루데이지 2012-07-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과 같은 생각이요..무한신뢰와 동시에 장바구니로 얼릉담아버리는....ㅋㅋ
hnine님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왜 저희 아빠가 생각날까요?

hnine 2012-07-05 14:11   좋아요 0 | URL
이분의 동시집도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은 표지 사진도 예쁘지요? 책 내용은 예쁘기보다는 정직하고, 꿋꿋하고, 존경스럽고...막, 그래요 ^^
블루데이지님 아버님께서도 혹시 저자분처럼 소신을 실천하시며 사시는 분 이실까요? 언제 아버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순오기 2012-07-0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농사는 짓지 않아도,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기에 앞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요.
이런 책을 읽으면 더 고마움을 갖게 될 거 같아요.
예전에 비해 요즘 사람들이 잘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예전에 자연이 오염되지 않은 상태의 먹거리들이 훨씬 질 좋은 거였답니다.

hnine 2012-07-05 14:14   좋아요 0 | URL
밥상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 요즘은 이게 없어요. 전 기독교는 아니지만 식사전에 기도부터 하는 이유를 알것 같아요.
갈수록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도 그렇고...학교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풀 한포기라도 내 손으로 직접 키워보게 하면 열 마디 말로 하는 것보다 더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