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이란 나라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나라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또 느낀다. 이들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라고 해야할까. 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해 우리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훨씬 더 초연해보인다. 워낙 자연 재해에 많이 노출된 나라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울고 불고 하지 않으며 받아들인다. 종교와는 별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 조상, 신, 이런 것을 받드는 문화도 그렇다.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고 비슷한 외모에, 쌀을 주식으로 하고,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있는 다른 세계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의 배경이 특이하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과 부모의 추천에 따라 듣도 보도 못한 어느 산간 지방, 즉 가무사리 라는 곳으로 일자리를 소개받아 가게된 유키가 주인공이다. 임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사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즐거움이 있으며, 철에 따라 어떻게 일의 종류가 달라지는지, 맛보기 정도이겠지만 간접적으로 알수 있었다. 산간 지방에서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하는 일련의 작업 과정들은 꽤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제목과 달리 별로 느긋해보이는 일상은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인데 마냥 느긋할 수만 있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가지면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

가무사리라는 곳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폐쇄성을 지닌 사회이다. 그런 곳은 대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더 끈끈하게 뭉쳐있기 마련이다. 그런 곳에 이제 갓 고등학교를 마친 남자 아이가 적응해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었을 법 한데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일에 대한 주인공의 호기심이 그곳에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기도 하고 (젊은이의 특성이 이런 거겠지) 그곳에서 만난 연상의 어떤 여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곳은 더 이상 간신히 버텨내야할 지루한 장소가 아니라, 매일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곳이 된다.

사백년 이상된 나무를 베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거의 의식의 수준이었으며, 물 흐르듯, 어떻게 보면 싱거운 이야기의 흐름 중에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의 힘을 빌기 보다는 온 마을의 남자들이 모여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치뤄내는 그 일은 의식의 수준이 아니라 의식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식을 택하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 의식을 통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경외심을 고취시키는 일은 곧 그들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높이는 의식이고, 그들의 생을 질기게 이어나가게 하는 의식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일상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감상에 젖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사는 이곳이 넓은 의미의 가무사리 아닐까 한다. 비슷한 일이 매일 계속되고 그래서 지루할 수도 있고, 또 그래서 스스로 그 의미를 되새기고 한번씩 부추켜야 하는.

 

조심스러운 얘기이지만 내가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또 느낀다. 어느 한도 이상으로 그 책에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는 것. 어느 정도까지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오히려 신비감이랄까, 풀리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 그래서 읽고 난 마무리는 경우에 따라 담백하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고, 싱겁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고 한다. 내가 아는 일본 사람들의 특징과도 비슷하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었 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결국 내가 그것을 찾아내었구나, 작가와 통했구나! 뭐 이런 느낌으로 마무리를 하며 쾌감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역시 담백하다는 마무리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책이다.

느긋한 나날이라는 것, 그것이 꼭 그렇게 매력적인 일상은 아닐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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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5-1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백 살이 넘은 나무가 아파서 베었을까요?
사백 살 넘은 나무를 가까이에서 보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예뻐 보이는지 몰라요.
이백 살 넘은 나무만 하더라도 대단하던걸요.


hnine 2012-05-14 12:40   좋아요 0 | URL
사백 살 넘은 나무를 저는 아직 실제로 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봤어도 누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그 나무가 사백년 씩이나 되었는지 모르고 지나쳤겠지요.
나무 한 그루 심을 때 앞으로 수백년 커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심는다면 마음 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사람의 일생이 참 길지 않다는 생각도 드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도 큰 나무를 벨 땐 저런 의식을 하는군요.우리나라도 비슷한 의식을 하던데...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방마다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할 때가 있고, 외국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얼굴이 우리와 똑같은 몽골 사람들이 먹는 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것도 신기했어요.다름과 같음의 오묘함을 발견하는 것도 외국을 알아가는 재미가 아닐까요?

hnine 2012-05-16 13:35   좋아요 0 | URL
나무를 벤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래 동안 이어오던 생명줄을 끊는 것이니까 숭고하게 치를만 하다고 생각되어요. 아마 나무를 위해서라기 보다, 나무를 베는 사람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는 생각 아니었을까요?
다름과 같음의 오묘함을 발견하는 재미, 맞아요. 그런 재미이겠지요. 같으면 같아서 신기하고 다르면 달라서 신기하고요 ^^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25   좋아요 0 | URL
동물을 제물로 바칠 때 기도하는 의식과 비슷한 사고방식이라고 봐요.결국은 죄책감을 덜어보자는 것이겠죠.

hnine 2012-05-20 06:38   좋아요 0 | URL
그나마 죄책감을 느끼긴 하는구나,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