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레몬케잌. 케잌 반죽에 레몬즙이 들어가고 레몬 껍질도 얇게 저며 넣는다. 레몬의 상큼한 향이 단맛과 어우러진 맛있는 케잌, 책 제목만 봐도 군침이 도는데, 따라나오는'특별한 슬픔'이란 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아홉살 여자 아이 '로즈'는 자기의 생일을 앞두고 엄마가 만든 레몬케이크를 먹던 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케이크의 맛에서 케이크를 만든 사람, 즉 엄마의 마음 상태를 읽어내게 된 것이다. 하찮음, 위축됨, 화가 남, 아스피린을 여러 알 집어 먹게 만드는 두통 때문에 이를 앙다무는 느낌,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맛.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로즈가 느끼는 맛은 미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인식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집에는 또하나 특별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로즈의 오빠 조지프이다. 책벌레에, 과학 천재인 조지프는 책을 읽고 혼자의 세계에 빠져 지내며 엄마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식구들과 말도 별로 안하고 친구도 별로 없는 조지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잘 모른다. 그런 조지프가 가끔씩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고, 로즈는 가족중에서 그것을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아빠와 공통 관심사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 남자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에는 엄마가 평소의 엄마가 아니라 얼굴에서 생기가 돌고 명랑해진다는 것 또한 로즈가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 뒷부분에 가면 로즈의 아빠 역시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로즈와 조지프의 특별한 감각이 의미하는 것 무엇인가?

아무것도 모자랄 것이 없는 완벽한 가족이지만, 사실 가족 구성원 각각은 공감대 형성이 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각자의 세계만 자꾸 키워나가고, 급기야는 각자의 그 세계속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엄마는 래리 아저씨를 만나 목공일에 온힘을 기울이고 거기서 보람과 활력을 찾는다. 집안의 막내로서 다른 사람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로즈는 그 사람이 만든 음식에서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아내는 능력을 갖게 된다. 수학, 물리에 관심이 많은 오빠는 점차 다른 사람들과의 교차점을 잃어가고 거기서 오는 어려움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다. 병원 앞에까지만 갈수 있을 뿐 결코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아빠는 그것이 단순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아빠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때문임을 알게 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 너무나 비슷할 경우엔 독자성과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세계와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를 가지며, 자신을 자꾸 그 안에 가두어놓으려 하면 그 삶은 고립되기 시작하고 점차 견뎌내기 힘든 삶이 된다. 책의 마지막에 로즈가 이런 말을 한다. 결국 오빠와 나는 비슷했던 것일텐데 나는 내 선택으로 세상에 남을 수 있었고 오빠는 그럴 수 없었다고. 견디기 힘든 상황이 어떻게 결말이 나느냐 하는 것은 결국은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있는 선택에 달려있다는 말 아닌가? 우리는 세상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인가.

이 책의 작가는 우리 나라에선 아직 많이 알려져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매우 독특한 상상력과 분위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데, 사람들의 심리, 정신적 이상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번역본이기는 하지만 표현이 상당히 다양하여 일반인의 표현 범주를 훨씬 뛰어 넘어, 여기 저기 다른 세계까지 뻗어있는 듯 하다.

책의 끝까지 가는 동안 처음의 호기심과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은채 읽을 수 있었다. 바로 다음이 어떻게 이어질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작가의 독특한 서술 방식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기가 어렵게 만들었다.

로즈의 경우엔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엔 또 어떤 특별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 나의 노트, 나의 옷, 나의 펜 등에서 내가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또한 나 역시 자신도 모르는 어떤 특별한 감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특별한 감각이 만들어져있지 않다면 좋겠다.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로라면 말이다.

나만의 세계를 가지는 것과, 그 속에 '고립'되는 것의 차이는 크지 않다. 고립은 곧 절망이고,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이 책 다음으로 막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새삼스럽지만 소설은 참 매력적인 방법으로 가르침과 생각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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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이 참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이례적으로 별 다섯 개로군요.ㅋ
저도 일단 보관함에 넣었슴다.^^

hnine 2012-03-01 14:01   좋아요 0 | URL
일단 전 다른 작품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개성과 독창성이 있는 작품엔 점수를 높게 줍니다.
이 책은 그냥 가볍게 읽어도 책장이 금방 넘어갈텐데, 읽어가다보니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가 서서히 보이는 것 같아서 더 몰입해서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