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혜민 스님께

 

1. 첫번째 물음

열심히 걷거나 달리는 동안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지요. 운전하는 사람은 차 밖의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것 처럼, 늘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주는 의미는 그 사람과 단절되어 있는 동안 깨닫게 되는 것처럼, 아파보면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건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되는 것 처럼.

살다보니, 스스로 아무런 진전없이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별로 바라던 바가 아닐 것입니다. 더 빨리 가고 싶은데, 다리를 다쳐서 달리기는 커녕 걷지도 못할 때,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하던 주위를 둘러보며 놓칠 뻔 했던 것을 감상하는 대신, 계속 달렸어야 할 목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멈출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불평, 탄식, 염려, 걱정으로 그 시간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자의적으로 스스로 가던 길을 멈추어, 비로소 볼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저는 너무 많은 짐을, 아니, 선물을 받았더랬습니다. 처음엔 좋아하며 안고, 지고, 메고 걷기 시작했는데 얼마 못가서 그 선물들이 곧 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다 가지고 가기엔 너무 과한 선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서 열심히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그게 아니었어요. 저도 지치고, 이렇게 질질 끌고 가다가는 선물도 다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했어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제 주위를 다시 보았어요. 그리고 제가 절대 포기하지 못할, 제일 중요한 선물만 챙겼어요. 그리고 아깝지만 나머지는 내려놓았습니다. 정말 놓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내려놓고, 그리고 저는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의 댓가는 금방 따라오던데요. 놓고 온 그것들이 자꾸 제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아니, 제 스스로가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느라 겪었던 괴로움과 동량의 괴로움을 또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멈추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은 세상을 뜰 때 까지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대부분, 원해서 멈추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멈춤을 당합니다. 그래서 멈추어 얻은 댓가를, 멈추어 놓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아집과 집착으로 다 소모해버립니다.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면 굳이 멈추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찾아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이래도 저래도 아둔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혹 자기 의지로 가던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부처이고 예수 아니겠습니까?

 

2. 두번째 물음

'다 내려놓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대신 미워하고 있는 나를, 또 다른 내가 조용히 내려다보며 그 미운 마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오늘 나의 생각이, 내가 소유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게 계속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 동의합니다. 스님의 책을 읽기 전부터, 그동안 제가 제 삶을 꾸려나가며 나름대로 알아내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스님, 그러면서 '허무주의'를 비껴갈 방법이 있는지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데, 오늘의 웃음이 내일 눈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내가 오늘 피땀흘려 쌓은 정성이 내일 모레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허무하지 않게 오늘 하루를 꾸려나갈 수 있습니까?

'비워라, 낮춰라, 버려라.'

비우고 낮추고, 버린 후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살아 숨쉬는 존재이기나 할까요?

 

 

 

이 책은 읽기 전 제가 예상하던 대로 입니다. 답을 줄 거라 기대하며 읽기 시작하여 물음으로 끝날 거라는. 실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니까요.

 

제가 밑줄 그은 부분 중 한 구절을 여기 옮겨볼까요.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 말라. 그저 그 마음과 친해져서 그 마음을 조용히 지켜봐라. (205쪽)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하는 것이더군요. 나라도 내 마음을 받아주고 사랑해주자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저는 바로 스님이 말씀하신대로 내 마음과 친해지기로 했습니다. 다스리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받아주고 들어주고 지켜봐주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마음이 바로 저 구절에 그대로 들어있기에 반갑고 또 확신도 들었고요. 다스리기보다 친해지고 지켜봐주기로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을 닥달하고 다스리는데 써버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마음도 영원한 것은 아니겠지요? 언젠가 바뀔지 모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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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찌찌뽕이예요~^^

hnine 2012-02-08 14:32   좋아요 0 | URL
제가 양철나무꾼님 서재에 이책 구입해서 볼것 같다고 댓글 달고 나서, 바~로 구입해서 읽었어요 ^^

2012-02-1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2-11 12:17   좋아요 0 | URL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지어온 약 다 먹은 후 더 안 먹어서 그런지 오늘 아침부터 또 다시 돌아오나 싶네요. 팍 아팠다가 떨어질때도 가뿐하게 떨어져주면 좋으련만 이렇게 질질 끄는건 정말 안좋아요. 그래도 이번에 병원 다녀오면서 평일엔 밤 11시까지, 주말에도 진료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 나라 좋은 나라라고 남편이랑 얘기했답니다.
요즘 여기 일교차가 심하고 오늘 내일, 기온차도 심하고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저 몸이 아프지 않아야 다른 것도 모두 아프지 않을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