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창생 일곱 명이 마흔 줄이 넘어 우연히 다시 모이게 된다. 영화의 제목 '써니'는 이른 바 이들 칠공주 그룹의 명칭.
영화가 시작되면 비교적 안정된 상류층 가정의 전업 주부 나미 (유 호정)가 아침 자명종 소리에 발딱 일어나 바지런을 떨며 각기 다른 메뉴로 식사 준비 하여 남편 출근 시키고 딸 등교 시키고, 열심히 집안 청소하고, 그런 후에야 겨우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딸이 남기고 간 토스트를 먹으며 베란다 너머로 지나가는 여고생들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정 엄마가 입원 중인 병원에 병 문안 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여고 동창생 하 춘화 (진 희경)가 입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녀는 말기암 환자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고때 그 칠공주 친구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나서고 하나 둘씩 재회를 하게 되는데.
<마지막 스캔들>의 강 형철 감독의 작품인데 감동도 감동이지만 기본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싶은 의도가 보이는 영화라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적중했다고 본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관객들은 심심치 않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 처럼 한번도 웃지 않으며 본 사람도 그 중에 있었을까?
영화의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시기가 나의 고등학생 시절과 얼추 비슷해보임에도 그 장면들이 반갑고 재미있고 그립다기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해서, 다 보고 나오면서도 왜 나는 웃음대신 불편함을 느껴야 했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의 삼십 년이 지나고 생각해도 내게 그 시절은 저렇게 웃으며 되돌아 볼 수 없는 때인가? 그런가보다 생각하니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왈칵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저들은 이제 저렇게 과거와 화해하고 웃는데 나는 아직도 그러질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 있는데 웃음이 나오겠는가.
全 前 대통령이 뉴스에 등장하고, 시내에선 연일 데모가 벌어지고, 대학 가서 절대 데모에 가담하지 말 것을 부모로부터 다짐 받으며 대학을 입학했던 우리. 학교 캠퍼스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 큰 학교 옆 까페에 앉아 있다가 그때 교내에서 막 시작된 데모를 창 너머로 '구경'하며 콱 목이 메어오던 그 느낌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용기 있게 가담도 못하면서 대강당 계단 꼭대기 나무 옆에 서서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학우들을 보며 비겁하게 눈물만 흘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영화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혼자서 심각하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바보 같이. 그때 실컷 부딪혔으면 지금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었을 것 아니냐고 자책도 하면서.
추억이, 지나간 시절이, 모두에게 웃음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 있으면 참 다행인데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웃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도 아주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는 생각은 안든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보다 좀 더 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한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우리 영화로 꼽고 있는 영화인데 반해 <써니>의 경우는 몇몇 인생을 너무나 판에 박힌 모델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그려놓고 있어서 매력도, 감동도, 재미도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색하고 과장되어 있는 배우들의 연기도 아쉬웠고.
아, 맨 마지막 장면에 잠깐 출현하는 배우 윤 정은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아름답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