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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의 특별한 여름 - 국제독서협회 아동 청소년상, 뉴베리 영예상
재클린 켈리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때는 1899년. 장소는 미국의 텍사스 펜트레스. 주인공은 열한 살된 여자 아이 캘퍼리나 테이트, 모두가 캘리비라고 부른다. 가족 구성은 할아버지, 아빠, 엄마, 위로 오빠 셋 아래로 남동생 셋, 그 밖에 요리사와 남녀 하인들의 대가족이다.
주인공 캘퍼리나 외에 관심가는 인물은 할아버지이다. 일찌기 목화 농장 일은 아빠에게 가업으로 물려주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뒤의 헛간에 틀어박혀 보내는 할아버지는 그곳을 일종의 실험실 삼아 각종 표본과 오래된 서적들, 현미경과 실험 기구들ㅇ르 갖춰 놓고 혼자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이 대가족중 유일하게 캘퍼리나이다. 바느질과 요리, 피아노를 배우기를 원하는 엄마의 바램과 달리 캘리비는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표본 채집을 도와드리고,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할아버지가 하는 일에 호기심을 느끼며 재미있어 한다. 맨 위 큰오빠 해리는 이 깜찍한 여동생에게 빨간 표지의 노트를 한권 주며, 보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기폭제 역할을 한다. 캘리비는 글을 쓸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자 흥분하여 그날 자기가 본 신기한 것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한다. 첫날의 기록은 더위에 지쳐 꼼짝 않고 누워있는 개. 건드려도 움직이기 싫어하는 때를 포착한 캘리비는 개의 입천장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개의 표정이 주로 눈썹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기록하던 중 개는 왜 눈썹이 필요할까 라는 질문도 스스로 만들어낸다. 이렇게 적어간 노트를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리자 할아버지는 캘리비를 자신이 하고 있는 실험의 조수이자 동료로 인정하고 자신의 실험에 동참시키기 시작한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조신한 숙녀로 자라게 하기 위해 이것 저것 가르치려는 엄마의 눈길을 요리 조리 빠져나가는 캘리비의 머리 쓰는 모습이 재미있다. 머리를 기르게 하는 엄마의 눈을 피해 치렁치렁한 머리를 일주일에 3cm씩 자름으로써 결국 한달 후엔 12cm나 되는 머리를 자르고야 마는 일, <종의 기원>을 읽고 싶지만 쓸데 없는 책을 읽으려 한다는 엄마의 걱정을 미리 피하기 위해 식구들 몰래 도서관에 가서 사서에게 조심스레 혹시 다윈씨의 책이 있냐고 묻지만 어머니의 허락하는 편지가 있어야 한다는 사서의 말에 불그락 푸르락 해지는 대목, 할아버지가 시험적으로 만들고 있는 술을 마셔보고는 저녁 식사 시간에 식구들 있는데에서 계속 딸꾹질을 해대는 장면, 할아버지의 현미경으로 처음 수중 미생물을 관찰하고 자기 눈 아래 보이는 꿈틀거리는 미생물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 등을 귀엽게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채집한 식물의 종명 (種名)을 찾아보다가 이것은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는 신종일거라는 확신을 갖고 할어버지와 캘리비는 함께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고 결과 통보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캘리비는 자기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차츰 발견해 나가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저자 재클린 켈리는 의사 겸 변호사이면서 뉴베리상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주인공 캘퍼리나를 통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북돋아 주려는 의도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텍사스 펜트레스에 있는 백년도 더 된 자신의 집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던 중 염감을 받았고, 이 책 내용중에도 나오는 노랑 메뚜기와 녹색 메뚜기에 대한 관찰이 그 영감을 더욱 자극했다는데 주인공 캘퍼리나는 자신과 약간 닮았다고 털어놓는다.
누구의 기대와 지시에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서 미래의 꿈을 찾아가는 일을 스스로 해내는 일을 열한 살 소녀가 당당히 해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누구가 제1간섭자이고 영향력을 미치는 자신의 부모일지라도.
책의 후반부, 스미스소니언 협회로부터 결과를 통보받고서 할아버지와 캘퍼리나의 반응은 서로 달랐지만 두 경우 모두 과학자는 언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지를 제대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읽는 사람도 함께 뿌듯하고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고, 1900년이 되는 새해 첫날 가족들 앞에서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고 용기 있게 얘기하는 캘퍼리나의 모습은 요즘의 청소년들 뿐 아니라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서도 보고 싶은 모습이기도 했다.
요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서도 읽으면서 거부감이 들지 않고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주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표본 채집이라든가, 분류, 진화 등은 요즘 생물학서는 이제 더이상 많이 하고 있지 않은 일이고, 주류를 이루는 분야는 아니라서 혹시 이 분야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읽고서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이 책에서 그 너머의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