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도 아프다
연송이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별로 매력적인 제목이 아니다. 저자의 이름도 낯설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책장을 들춰보게 되는 것은 대체 무슨 얘기를 써놓았나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조금이라도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일 것이다.
읽어보니 글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기는 하다. 마치 옆집의 입심 좋은 아줌마의 한바탕 수다를 깔깔거리며, 무릎을 쳐가며 듣고 난 기분이랄까. 속이 좀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순간적인 공감은 줄 지언정 아무런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왜 우리 아줌마들은 어느 순간 반 우울증 환자가 되고, 매사에 의욕을 잃으며, 한때 좋아서 결혼까지 한 남편이 그저 귀찮고 무심한 존재가 되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한숨 쉬게 되는지, 금방 공감이 되게 글을 쓰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리고 평소의 나의 생각을 보태어 제안하고 싶은 것을 이 기회에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뭐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이 될수도 있겠는데 막상 결혼을 앞둔 후배가 직접 물어온다면 그냥 겪어보라고 할 것 같다. 

1. 경제력
가사 노동, 육아, 이런 것들에 하루 24시간을 다 소비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내 역할을 인정받기는 힘들다. 현실이다. 남이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내가 내 자신에 불만족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남편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자기의 수입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시댁, 친정, 기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를 낳은 후 잠시 일을 손에서 놓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에도 일을 놓는 것이 '무한 기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유한 기간' 놓는다는 마음 가짐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본인이 길을 터놓아야 한다.  이거, 거저 되지 않는다. 남편이 해주지 않는다. 기대하지 말자. 내가 해야할, 온전히 나의 몫인 일이다.

2. 나를 위해 살자
나 역시 책 속 저자의 말처럼 나는 절대 '일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어릴 때부터 결심을 했던 사람이다. 즉 보통 여자라면 일과 육아, 둘 다 만족스럽게 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혹시 본인은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그 자식은 늘 결핍 상태로 자라고 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부터 내 일과 육아가 오버랩되는 시기가 왔고 그때 나는 일을 놓았다. '일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는 생각의 실천이었다. 이후로 나의 온 신경과 관심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감에 따라 그 신경과 관심은 조금씩 늦추고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말 못하고, 엄마가 먹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그래야하는 서너살 시기가 지나면 이제 아이는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을 점차 배워가고 거기서 만족과 기쁨을 느껴간다. 우리 나라 엄마들,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아이가 엄마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생활을 하며 자식의 (학업)성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NO, NO, NO.
생활 패턴의 스위치가 누구나 쉽지는 않지만, 늘어지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전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래서 내 책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추진력 있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즉 알아서 내 앞가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남 탓, 주위 환경 탓, 실컷 하되 한번으로 족하다. 그것을 계속 마음에, 입에 담아두고 나의 앞으로의 행보를 막는 구실이 되어서도 안되고 변명이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을 누가 알아다 던져주기 전에 스스로 찾고 뚫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줌마만 아프겠는가? 아저씨도 나름 아플 것이고, 아무 걱정 없어보이는 아이들도 나름의 고민과 걱정이 다 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괜찮다, 괜찮다 덮어두며 살아 큰 병이 되기 전에, 이렇게 '나는 아프다'고 만방에 알리는 것, 자신으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엔 대책이 와야한다. 나의 주변 상황, 주변 인물들을 개조시키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는 대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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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공감해요. 타인을 개조시키기 위한 대책이 아닌 나를 움직이는 대책에서 특히.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민감하도록 키워지잖아요. 요즘은 좀 덜 하려나요?
여하간... 내 욕심 보다는 가족을 우선할 때가 많죠.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포인트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라는 말씀...... 저 진짜 긍정해요. ^^

hnine 2011-01-05 11:03   좋아요 0 | URL
가족, 아이 위주로 사는것에 대해 사람마다 각자 가치관이 다르니까 뭐라 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중에 아이도 엄마의 그런 지나친 관여가 부담스럽고 귀찮아 질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 상처 받지 않고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것, 나 자신이 챙겨야 할 문제인데, 나도 모르게 누구때문에, 어떤 상황때문에 라는 말을 저부터 대화나 글 중에 자주 쓰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말이 나오고 그런 글이 써지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제일 먼저 달려와 공감, 긍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섬사이 2011-01-0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서관 엄마들과 미술관에도 가고, 콘서트도 가고, 독서모임도 해요.
엄마들의 공통된 의견이 남편들이 그런 아내들을 '낯설어' 한다네요.
가사일과 아이들하고 세트로만 묶어 생각했던 아내가
어느 날 그럴 듯한 책을 읽고,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 미술관에 간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하더랍니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런 남편들을 보며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경제적 독립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를 움직이는 대책'이 와야 한다는 말에 박수치며 공감해요.

hnine 2011-01-05 12:02   좋아요 0 | URL
'가사-아이들-나' 이렇게 세트로 묶어져 생각되어지는 것은 많은 주부들의 공통점일거예요.
도서관 엄마들과의 미술관, 콘서트, 독서모임. 가족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아요. '엄마가 무슨 심부름꾼일줄 아느냐, 오늘 하루 종일 엄마 시간은 한 시간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이런 말을 퍼붇고 있는 것을 알고 제 자신이 참 싫어지더라고요. 다른 가족들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이 나이까지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해서 다른 엄마들과의 모임에 참석을 잘 못하고 있네요.

BRINY 2011-01-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신 어머니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함부로 못하고...그냥 안타까울 뿐이에요.

hnine 2011-01-05 17:2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오신 것을 보았으니 우리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해요. 대책을 세운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도 그대로 답습하고 우리 딸들이 또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너무한 여자의 일생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요?
나이드신 어머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