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들을 만나 감탄하는 기쁨, 부러움, 뿌듯함, 그런 행복을 오래 누리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감사함.  

 

아직도 이 책의 저자 이름을 못외운다. 책 표지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속에 잘 찾아봐야 조그맣게 나오는 이 책의 저자는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율리시스 무어>는 책에 나오는 어떤 인물의 이름인데 주인공 아이들이 새로 이사간 집의 예전 주인으로서 이미 죽은 사람이라서 한번도 직접 이야기 속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1권을 읽는 내내 '이 사람 정말 죽은 것 맞아?' 의심하며 읽었는데 나보다 먼저 읽어 6권을 읽고 있는 아이에게 미리 엄마에게 어떤 정보도 미리 말하면 안된다고 못을 박아 놓았다. 이것이 바로 연작물을 읽는 재미 아닐까? 

  

 

  

 

<할매, 나도 이제 어른이 된거 같다>
경북 밀양 단산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
의 글모음집이다.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이신 이 승희 선생님이 엮어 2000년에 처음 책으로 내었으니 글을 쓴 아이들은 지금쯤 스무살이 훌쩍 넘어있겠다.
선생님과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하며 쓴 글이라 할지라도 읽어보면 이들의 생활이 그대로 묻어나는 내용과 문체에 빠져들게 된다. 뒤에 이 오덕 선생님께서 '어른들을 위한 도움글'이란 제목으로 자세하고 꼼꼼한 평을 써주신대로 사투리는 굳이 표준말로 바꿔 쓸 것 없이 말할때 쓰는 그대로 쓰는 것을 더 권장한다고 한다.
박 미정 학생의 '트럭 탈 때'라는 글을 그대로 옮겨와본다. 
'막 논에서 오는 길이다. 딸기 싣는 트럭을 타고 왔는데 어떻게 타면 재미있는지 이야기해 줄게.
트럭을 탈 때는 뒤에 탈 때가 제일 재미있거든. 뒤에 타도 그냥 앉아 있으면 재미가 없다. 일어서서 딸기 묶는 줄을 잡고 서 있는다. 머리를 풀면 더 재미있다. 차가 속력을 좀 내면 머리카락이 막 휘날리기 때문에 내가 나는 느낌이 난다.
굴다리 안에 들어갈 때는 앉지 말고 서 봐! 내가 굴다리만 하게 커지는 것 같다니까! 굴다리가 낮으면 앉고.
가까운 거리로 트럭 탈 땐 꼭 뒤에 타 봐! 진짜 재미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타래이. (120쪽)'
짧은 글이지만 재미있게 잘 썼다. 자신의 느낌을 글로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구나 하는 느낌이 단박에 든다.
백아르미라는 예쁜 이름의 어린이가 쓴 글 '잠 못자는 깻잎'도 올려보자.
'강 건너
비닐하우스에 켜진 불
멀리서 보면
참 예쁘다
하지만
저 불은
들깻잎을 못 자게 깨우는 것.
나는 이제 잘라 하는데
저거들은 얼마나 힘들겠노
.
인간도 저렇게 당해 봐야
식물의 아픔을 알 거다
(139쪽)'
환경보호에 대한 전문가의 어떤 글보다도 마음에 와닿는다.
이 밖에도 농사짓는 집에서 어릴 때부터 일을 도와야 하는 것에 대한 힘듦,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하고 사는 아이의 생각,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꾸밈없는 생각 등이 잘 드러나있었다.
표지의 저 만화같은 재미있는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취학 전 아이들부터 보여주면 좋을 그림책 <천 년의 도시 경주>
한 미경 글, 이 광익 그림
, 웅진주니어에서 올해 펴냈다. 
경주를 소개한 책이 어디 한두권이랴. 아이 책만해도 수십권이 될텐데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이 책이 적격이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엄마가 들려주는 것 같은 문체, 그리고 단어들로, 아이들이 이해하기 적절한 수준으로 재화되었기 때문이다. '경주에는 절이 아주 많은데 그 중에는 축구장보다도 더 큰 절이 있었어'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 눈이 벌써 동그래지지 않겠는가? 아주 큰 절이 있었대,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말이다. 그 절의 이름은 '황룡사'. '집집마다 머리에 기와를 얹었어요' 라는 표현, 어디서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연못이라는 '안압지'. 작가가 얼마나 단어 선택 하나에도 신경을 썼는지 마지막 페이지의 다음 문장에서도 드러난다.
'그동안 찾아낸 보물은 박물관에 오글오글 모여 있어요.
여러분이 말을 걸면, 보물들은 긴 잠에서 깨어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거예요. 사붓사붓 여러분을 따라다니면서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어른이 글을 쓰기란,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곁으로 들었다. 아, 이 책이 맘에 드는 점 또 한가지는 그림이다. 토우가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서 길을 안내해주는 형식의 그림인데 토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림의 색채 또한 튀지 않으면서도 칙칙하지 않아 동양화의 느낌을 주고 둥글둥글한 선, 경주 시가지 그림조차 어린이들이 봐도 복잡하지 않게 특징을 잘 잡아 그려져 있다.  
도서관에서 찾아낸 책이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 Schubert의 9번 교향곡을 들으며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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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건 어떨까요?

율리시스가 그리스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맨날 보는 그곳. 지겹다. 어딘가 재밌는 곳이 업을까? 어젯밤에 몰래 외워둔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라는 주문을 외자 순간이동을 하여 어디론가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경북 밀양 단산 초등학교" 어떻게 그 학교 이름을 알았냐구? 그런건 묻지말자. 김빠지게.. 율리시스는 몰래 숨어 아이들과 선생님의 수업을 훔쳐본다. 그런데 세상에 백아르미 (100Army) 라는 고대 전쟁의 여신의 이름을 가진 듯한 한 학생이 고대 신화를 얘기하고 있다. 들깻잎이 실은 밤이 되면 무서운 괴물로 변한다는 것 을 어떻게 알았을까..

몰래 나와 맨 돌과 산밖에 없는 길을 따라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밤. 무서운 느낌이 든다. 꽤나 넓은 곳에 절터가 있다. 깜깜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에 뭔가가 채인다. 무슨 보따리인데 왠지 묵직한 것이 보물이라도 있을 듯 하다. 주위를 좀 살핀 후 보따리를 풀어본다. 갑자기 바람이 쉭 하면서 불어와 수많은 이야기들이 마구 조잘댄다.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는 말들이 재잘거려서 참기 힘들다. 이리저리 도망도 다녀보지만 이야기들은 끝까지 따라온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 다시 돌아가는 주문을 왼다. 계속 따라온다...아 !!
몽롱한 상태에서 누군가 흔들어 나를 깨운다. 일어나보니 엄마가 에그베이컨을 만들어 놓고 밥을 먹으라신다. 꿈.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 이건 뭐야..


ㅎㅎ


그나저나 슈베르트 9번 교향곡의 느낌은 어떠하신지요 ? hnine님 ^^

hnine 2010-08-02 05:59   좋아요 0 | URL
하하...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금방 환타지 동화가 한편 만들어졌네요? ^^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정말 주문같은 이름이지요? 실명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답니다.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은 (지금도 또 듣고 있는 중이지만) Great이라는 제목으로 기대한 만큼 웅장한 스케일은 아닌 것 같고요, 여전히 너무나 Schubert적이라는, 뭐 저 혼자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