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감나무에 감이 많이 달렸다. 아직은 푸르딩딩 하지만 지금 열심히 열심히 살을 찌우고 있을 것이다. 곧 푸름에서 붉음으로 넘어가는 그라데이션을 보여주겠지.
사과를 주문하려고 보니 벌써 아오리 사과가 나와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잠시나마 더위가 견딜만 해지는 것 같다.
자연은 이렇게 '나 지금 놀고 있지 않다고요!' 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데, 요란 떨며 정작 할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 것은 말 없는 저들이 아니라 바로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나는 김 중미의 <모여라, 유랑인형극단> 읽으며, 아이는 <율리시즈 무어> 2권을 읽으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지난 겨울, 친구가 율리시즈 무어 읽는 것을 보고 사달라고 하여 아이 아빠가 사주었는데 (나 같으면 그렇게 한꺼번에 네권을 덥석 사서 안기진 않는다) 정작 조금 읽어보더니 계속 안 읽길래 중고책으로 팔까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 했었는데, 그냥 두니 제가 제 손으로 저렇게 다시 읽는다. 1권을 하루에 다 읽더니 오늘 2권 읽기 시작하면서 나 보고도 읽어보라고 성화이다.
만약 지난 겨울에, 사달라고 해서 사주었더니 왜 안 읽느냐고 다그쳤더라면, 만약 안 읽을 거면 다시 팔아서 다른 책이나 사자고 중고책 시장에 내 놓았더라면? 그렇게 다그쳐 아이가 자기의 의지보다 엄마의 다그침에 의해 마지 못해 읽긴 읽었다면?
최고의 교육 방법 중의 하나가 '기다려주는 것' 이라더니. 나 처럼 성격 조급한 사람은 자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어제 모처럼 아이와 영화를 보려 가기로 하고, 현재 상영중인 영화 세 편의 트레일러를 인터넷으로 보여 주며 네가 보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마법사의 제자>가 그래도 낫겠단다.
보고 온 소감, 디즈니가 만든 '해리 포터' 아류랄까. 아이나 나나 '별로다' 라며 영화관을 나왔다. 제작비도 많이 들었다던데. 디즈니 영화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곘다.
내일 보기로 한 '오션스'에 더 기대를 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알감자 구이를 흉내 내어 봤다. 언젠가 차를 타고 오는 길 들른 휴게소에서 파는 것을 보고 사달라는 것을 집에 가서 만들어주겠다고, 또 나의 그 '사서 고생 발언'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알감자를 씻어서 90% 정도 익을 정도로 물에 삶은 후 엄지 손톱 만큼의 버터 조각을 프라이 팬에 녹이고 감자를 그 위에 굴리며 노릇노릇 구워주었다. 허브 가루가 있으면 위에 뿌리면 좋겠지만 우리 집에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고, 찍어 먹을 소금과 함께 프라이팬 째 내주고 이것이 점심이니라 선포. 좋단다.

<모여라, 유랑인형극단> 은 내용도 재미 있지만 (김 중미 아닌가, 김 중미), 잊고 있던 나의 꿈 한자락을 자꾸 생각나게 하여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각별한 마음이 더해가고 있다.

지난 꿈, 앞으로의 꿈......
순서를 바꿔보는 것은 불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