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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평점 :
도라지꽃을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훨씬 예쁘다. 이보다 더 간단하게 생긴 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해서 예쁘다. 보라색 또는 흰색. 갈라지지 않은 통꽃의 꽃잎 다섯 꼭지점이 정확한 각도로 사이를 두고 있다.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는 봉오리대로 예쁘다. 종이접기로 공을 만들때 마지막 단계에서 입으로 힘껏 바람을 불어넣어 빵빵해진 상태, 도라지 꽃 봉오리는 꼭 그 종이공을 닮았다.
책 표지에 도라지 꽃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흩날리는 보라색 꽃잎, 또 한쪽엔 통나무 집이 보인다. 그리고 이 통나무집의 주인장이자 이 책 저자의 화장기 없는 활짝 웃는 모습이 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 진동리, 곰배령 들머리 설피 마을에서 통나무 민박집을 꾸려가고 있는 저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학 4년을 마쳤는데 무슨 인연이었을까. 딸, 아들 세쌍둥이를 데리고 이 산골 마을에 들어와 산지 17년째라고 한다. 눈이 하도 많이 와서 겨울이 오면 눈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해야하는 동네. 설피 마을이란 이름 속의 '설피'란 다래 넝쿨을 엮어 만든, 눈밭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덧신으로서 이 마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라고 한다. 씨 뿌리고, 나물 뜯고, 거두고, 짐승 키우고, 집 짓고 건사하는 일 등을 여가 활동이 아닌 생존의 수단으로 해나가면서 이번 겨울만 넘기면 다시 도시로 나간다는 결심을 하기를 몇번씩, 하지만 다시 날이 풀리면 마음이 바뀌어 지금까지 눌러 앉게 되었고 이제는 산을 너무나 사랑하는, 숲의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갓난장이였던 아이 셋이 이제는 다 자라서 엄마 없을 때에는 통나무집의 손님들 대접도 너끈히 하고 있다니, 그녀가 그동안 하고 싶은 말들이 어디 책 한권 분량만 되랴 싶다.
산골마을에 들어올때에는 함께 했던 남편의 이야기가 책의 어디쯤에서부터 빠지고 네식구 이야기만 나온다. 언제부터 저자는 남편 없이 아이 셋만 데리고 그간의 세월을 지내오게 되었는지, 끝까지 읽어도 알수가 없다. 그녀의 외로움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이 세상에 나름의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할수도 있겠지만, 모질게 마음 먹고 살아야 하는, 살아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을 저자는 그동안 얼마나 여러번 자신에게 해대었을까.
돌아보니 내 마음의 기쁨 혹은 슬픔도 영원한 것은 없었다. 삶의 희로애락 또한 계절의 순환처럼 끝없이 흘러가는 듯하다. 설피밭에 살고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삶의 흐름을 타고 논다. 나 역시도 자연의 일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신념은 하루하루 나의 종교이자 신앙이 되어간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준비하고 그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 어느 사이 습관이 되어간다.(191쪽)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산다. 자연의 흐름을 타고 그냥 산다. 이 책을 다 읽은 나의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