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 보았지...' 라는 노래를 부른 그룹의 이름도 '동물원'. 대학교 때 내가 정말 좋아하던 그룹이었다. 어제 오후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그 노래를 계속 흥얼흥얼 거렸다.

이곳으로 이사오고 제일 처음 나들이 삼아 가본 곳이 동물원. 아이가 여섯 살 때였다. 그 이후로도 얼마나 자주 갔는지 아마 어제 간 것이 열번 째 쯤 되지 않느냐고 아이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수달 사육사 공사를 하고 있던 기억이 나는데 어제 가보니 사육사 밑으로 지나가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통로를 따라 가며 아이들이 수달을 옆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볼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귀엽게 생긴 수달이 먹이로 던져진, 꽁치로 보이는 생선 토막을 열심히 먹는 모습이 새삼 신기했다. 

원숭이 사육사 속의 원숭이는 사과, 귤, 토마토 조각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두 손으로 과일을 잡고 먹는 모습이 사람들이 과일을 먹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여 사육사 유리창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원숭이는 그 과일이 왜 자기에게 주어졌는지 모른다. 던져 주니 정신 없이 달려들어 맛있게 먹고 있을 뿐. 사람들이 둘러서서 그런 자기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알까?  그래서 주어진 먹이라는 것을 알까? 던져진 먹이, 본능에 따른 행동, 보상, 댓가, 구경꺼리...이런 말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기 시작하더니, 이 동물원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인간들의 구경거리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야생에서 뛰어 다녀야 하는 동물들이 잡혀와 우리 속에서 평생을 지낸다는 생각을 하자 좀 우울해지기도 했다.

연휴 마지막 날,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동물원의 주 관람객을 어린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을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어제 보니 푸릇푸릇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소박하고 수줍어 보이는, 요즘 젊은이 같지 않아 보이는 커플도 있었고, 잔뜩 멋을 부린 티가 금방 나는 남자와 눈의 띄게 공들인 화장에 긴 생머리를 연신 뒤로 쓸어 넘기는 여자 커플도 있었다. 혼자 온 남자도 보았다. 동물원이 그리 크지 않다 보니 돌다 보면 한번 본 사람을 또 보게 되는 수가 많은데 그 남자는 카메라 하나 메고 잔뜩 움츠린 채, 동물을 보는지 사람들 구경을 하는지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인지 잘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이가 처음에 왔을 때 탔던 놀이기구를 가리키며 탈거냐고 물어봤더니 아이가 단번에 싫다고 한다. 이제 그런 건 안탄다고.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음에 올때는 아마 개나리, 진달래가 온 동물원을 덮고 있겠지. 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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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2-16 17:18   좋아요 0 | URL
이제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해도 싫어합니다. 어제 동물원에서 Brown bear가 있길래 어릴 때 부르던 같은 제목의 노래가 생각나서 한번 불러보라고 했더니 애들이 부르는 노래라면서 거기서는 싫고 있다가 집에 가서 부르겠다고 하더군요.

연휴는 무사히 보냈는데 여전히 저는 명절이 조금도 기다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며느리랍니다. 올해 추석까지는 이제 걱정 없다 라는 홀가분함이 더 컸다고나 할까요.

상미 2010-02-1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물 좋아하는 병규는 아빠랑 대전 동물원도 다녀왔지.ㅋㅋ
옛날 옛적 남편이랑 데이트 할 때, 동물원도 가끔 갔지.

hnine 2010-02-16 21:07   좋아요 0 | URL
대전동물원에 언제 다녀왔는지. 지금은 예전보다 확장되어서 플라워랜드라는 곳도 생기긴 했어.

상미 2010-02-17 00:1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벌써 병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니까 한~~참 전이지...

비로그인 2010-02-1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누구 손잡고 가끔 갔는걸요 ^^..

hnine 2010-02-17 09:17   좋아요 0 | URL
부모님 손 잡고...는 아니시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