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집에 없던 어제 낮에 오랜만에 TV를 보다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라는 드라마에서 '홍도야 울지마라' 노래가 하도 가슴 절절하게 나오길래, 드라마가 끝나자 마자 벌떡 일어나 피아노로 뚱땅거려보았다. 
내게도 홍도야 울지마라는 나름 추억이 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일때였는데 어느 날 아빠께서 한밤 중에 처음 보는 아주머니를 집에 모시고 오셨다.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시면서 일도 도와주실거라고 하셨는데 커다란 짐보따리를 들고 서 계시는 아주머니 첫인상이 참 좋았다. 아빠보다도 연세가 많아 보이시고 아빠께서도 깍듯이 존칭을 하셨는데, 아빠와 같은 고향분이시고 사정이 있어서 그야말로 무작정 상경하셨다는 것은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마땅히 갈데가 없으신 분을 아빠께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 거였다. 엄마께서 일을 하셨으니 집안 일을 누군가 대신 해주어야 했던 우리 집에서 아주머니는 그날부터 집안 일만 도와주셨던 것이 아니라 내 밑의 여동생은 아주머니를 마치 엄마처럼 따랐다. 아주머니께서는 아침에 내 동생 책가방도 챙겨 주시고, 연필도 깍아 주시고, 같이 놀아도 주시고. 엄마로부터 받아본 적 없는 잔정을 동생은 아주머니로부터 듬뿍 받았다고나 할까. 엄마께서 며칠 집을 비우셔도 찾지도 않는 동생이, 아주머니께서 며칠 어디 가계시는 동안은 아주머니 언제 오시냐고 계속 울었댔다.  

아주머니께서는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셨다. 청소를 하시거나 빨래를 하실 때 늘 흥얼흥얼...심심해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나는 그 노래를 유심히 듣다가 어느 날 부터 나도 따라 부르게 되었다. 아들 삼형제를 두신 그 아주머니께서는 고향에 두고 온 제일 어린 막내 아들이 생각나서, 노래를 부르시다가 어느 틈엔가 보면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홍도야 울지마라,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나그네 설움...나중에 알게된 그 노래들의 제목이다. 그 중의 홍도야 울지마라는 분명히 단조가 아닌 '장조'의 노래라서 가사 없이 그냥 따라하다보면 사실 슬픈 곡조는 아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왜 눈물을 흘리실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왜 우시냐고 한번도 직접 여쭤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아주머니 생각을 하면서 홍도야 울지마라를 내 멋대로 피아노를 막 치고 있는데 옆에서 웬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슬쩍 돌려보니, 으악, 어떤 아저씨께서 서서 베란다 너머로 우리 집 안을 쳐다보며 내가 치는 노래를 듣고 계신 거였다. 우리 집이 1층이고, 피아노가 바로 베란다 창문 옆에 있으니, 어디서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오니까 쳐다 보고 계셨나본데, 그때 나는 옷도 거의 잠옷 바람에, 머리도 산발을 하고 ㅋㅋㅋ 
그렇다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베란다의 커튼을 확 쳐버릴 수도 없고 해서 피아노 소리만 줄여서 치면서 아저씨가 빨리 다른 곳으로 가시기를 기다렸다. 

아주머니가 보고 싶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였나, 큰 아들이 와서 아주머니를 우리 집에서 모셔갔는데, 한동안 연락도 하고 지내다가 지금은 연락이 끊겨 버렸다. 이젠 일흔도 넘어 여든이 다 되셨을 텐데... 그 아주머니 덕분에 배운 노래들. 홍도야 울지마라, 목포의 눈물 등을 외워서 부를수 있는 초등학교 3학년은 아마 지금도 흔치 않으리라.

  

 

아래 올려 놓은 노래도 아주머니로부터 배운 노래 중의 하나인데, 이 노래 제목을 아는 분이 내 서재를 방문해주시는 알라디너 중에 계실까? (위에 예로 든 노래 중 하나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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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2-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장면 저도 보았는데 앞뒤 전혀 모르고 보아도 애잔했어요. 추억이 깃든 노래를 갖고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노래를 들으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억들... 좋아요.^^

hnine 2009-12-20 22:1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도 그 장면 보셨군요.
연기력과 상관 없이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고수, 참 잘 생기지 않았나요? ㅋㅋ

마노아 2009-12-21 13:59   좋아요 0 | URL
백야행 보면서 고수에게 반했어요. 모성애를 자극하는 눈망울이에요.ㅎㅎㅎ

hnine 2009-12-21 16:04   좋아요 0 | URL
백야행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로 나올까요?
모성애를 자극하는 눈망울...정말 그렇네요.

같은하늘 2009-12-21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를 보지 못하는 저는 드라마 얘기 나오면 할 말이 없어져요. -.-;;
근데 저도 위에 언급하신 노래들 다 알아요.
예전에 울친정아빠가 틀어놓은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

hnine 2009-12-21 09:30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아이 있을 때에는 TV 안켜지요. 엄마는 보면서 아이에게 못보게 할수는 없으니까요.
언젠가 가수 한영애가 부른 옛노래 몇곡이 들어있는 CD가 나왔길래 (그것도 벌써 오래전이네요) 사서 들었는데 그것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