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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드라마틱'하다는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그렇다.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면 이 소설은 그 점에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본다. 시대적인 배경도, 역사적인 배경도 다른 소설에서 흔히 다뤄지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소재 역시 단순한 애정사나 역사물이 아니라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그것도 나라를 상대로 하는 사기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이니, 흥미가 없을 수 없겠다 하겠다. 또한 저자의 글을 이끌어가는 솜씨가 '솜씨'라는 말이 이미 어울리지 않을 경지에 있기 때문에 독자를 휘두르는 포스마저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이런 소재를 택하게 된 동기에 대해 황현이라는 분의 <매천야록>에 실린 김홍륙의 일화가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어떻게, 얼마나 인용했는지, 그리고 책 중에 인용된 시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해놓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수년 전, 그의 또다른 저서인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신경숙의 <리진>사이에 표절시비가 있었던 일이 기억이 났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지루할 새라 삽입되어 있는 커피관련 삽화와 소제목이 쓰여있는 간지의 구성도 나쁘지 않았고, 소제목 모두 커피와 관련시켜 붙인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라 생각된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소제목은 '커피는 오직 이것뿐이라는 착각이다.'. 커피 뿐이랴? 무엇이든 지금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착각으로 끝나고 마는 일들을 몇번 겪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만한 말이다. 오직 이것뿐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 그렇다는 것일 뿐, 영원하리라고 까지 기대하지는 말것. 이 책의 주인공들의 사랑도 그렇지 않던가? 과연 이반은 따냐를 사랑했을까? 그럼 따냐는 이반을 사랑했을까? 사랑했다면 이 책의 결말이 그렇게 나지 말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커피는 오직 이것뿐이라는 착각'이라는 말 중의 '커피'는 남녀 사이의 '사랑'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누가 어떤 반기를 들던간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3년간 싱가포르, 도쿄, 대전, 서울의 여러 다방을 전전했다는 후일담마저 고생했다는 얘기로 들리지 않고 아릿한 추억담으로 들리는 것을 보면 커피는 고생을 추억으로 포장시키는 마력의 액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러시아 커피는 어떤 맛일까? 추운 나라 러시아 하면 술만 연상이 되었었는데, 문득 궁금해진다.
단번에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책은 웬지 덜 끌리는 나의 습관때문에 안 읽고 있었던 이 책을, 고마운 님의 선물로 마침내 읽게 되었다.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