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 - 자신감 없고 의욕도 없는 우리 아들 '기 살리기' 프로젝트
레너드 삭스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알파걸', '주눅든', '지켜라'
요즘 책의 제목에는 이렇게 자극적인 단어들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지. 누군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도 남을 이런 단어들로 이루어진 책의 제목. 원제는 'Boys adrift' 이다. 그대로 번역하자면 '방황하는 남자아이들'이라고 할까? 책을 다 읽고서 보니 '남자가 되지 못하는 아들' 혹은 '남자로 크지 못하는 아들' 이렇게 의역을 해도 될 것 같다.
갈수록 여자 아이들은 남성화되어가고, 반대로 남자 아이들은 여성화되어간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야먕과 추진력으로 특징지워지던 남성성의 한 단면이 무너져 가고, 학습에 점점 더 무관해지며 성취동기가 부족해가는 남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자 아이들의 문제와는 별개로 다루겠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음에도 이 책의 우리말 제목에는 '알파걸들에게 주눈든'이라는 어구를 집어 넣음으로써 마치 남자 아이들의 이런 문제가 여자 아이들로 인해 생긴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남자 아이들이 예전의 남성성을 갖추며 자라지 못하고 의욕과 열정을 잃게 되는 요인으로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지나친 조기 교육, 경험적 지식이 아닌 가르쳐서 획득되는 지식으로의 전환 등 남자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 방식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남자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예전보다 흥미를 잃고 있다는 점.

둘째, 게임의 영향이다. 남자 아이들이 특히 몰입하는 게임은 현실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째, ADHD에 처방되는 약물을 과도하게 사용한 나머지 아이들의 동기와 관련된 뇌 영역이 손상을 입고 있다.

네째, 플라스틱 병과 화학물질들로부터 유출되어 나오는 환경 호르몬의 영향이다. 알게 모르게 남자 아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저하시켜 뼈를 약하게 하고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

다섯째,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대중문화가 남성다움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있다.


첫번째 요인과 관련하여 저자는 경우에 따라서 남녀 공학보다 남자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로 옮겨 보는 것도 효과가 있다는 예를 제시하고 있으며, 두번째, 게임에 관해서는 비디오 게임은 현실이 아닌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실 세계는 그렇게 강한 만족감을 주거나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일으킨 문제로부터 무작정 도망쳐 나올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약물의 남용에 대해서는 저자가 의사라는 자격으로 쓴 것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만 하다. 부모는 자기 아이의 문제점을 버릇이 잘못 들었다거나 행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되어지는 것보다 어떤 이름의 병명으로 설명되는 것에 더 안심한다는 것이다. 즉 책임 소재가 부모가 아닌 제 3자의 설명으로 대체되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장 약물로서 치료를 받게 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 또한 놀라운 점은 ADHD를 가진 아이들이 약을 복용했을 때 성적이 향상되었듯이, 평범한 아이들도 ADHD약을 복용하니 똑같이 성적 향상이 나타난 것이다. 약물 아닌 다른 해결책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로 처방되고 있는 약물로 리탈린, 애더럴, 콘체르타 같은 것들이 있는데, 놀라운 것은 비디오 게임을 오래 하게 되면 이런 약물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 즉 뇌의 전전두엽 피질로 가는 혈류가 방해를 받게 되는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아무튼 비디오 게임은 지금까지 읽은 육아, 교육과 관련된 어느 책에서도 긍정적으로 허용해주자는 내용을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네번째, 환경호르몬의 영향에 대해서는 여자 아이들의 조숙화를 가져오는 환경 호르몬이 남자 아이들의 성 발달 지연 혹은 교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상당수의 증거들이 있다고 한다. 페트병 음료, 아기들의 고무젖꼭지 사용을 피하라는 충고와 함께.
갈수록 여자들은 무능한 남자와 사느니 혼자 사는 것을 택하고 있고, 남자들은 실제 여자들, 즉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때로 듣기 싫은 말도 내뱉곤 하는 현실 속 여자들보다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난 여성적 이미지에 빠져드는 것에서 더 큰 만족을 얻고 있다고 하니, 전체 사회 구조에도 서서히 변화가 오지 않을까. 인생의 낙, 즐거움을 우리는 너무나 가깝고 쉬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그런 삶이 마지막까지도 만족감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서도.
끝으로 저자는 남자 아이가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남성성을 가진 남자들을 보고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데, 예전에는 대개 아버지가 바로 그런 대상이었으나 꼭 그 남자가 아버지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또한 그 사람이 아버지뿐이어서도 안 된다고. 즉 남자 아이에게는 건강한 남성에 대한 다양한 역할 모델을 제공해줄 수 있는 많은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 모델을 찾지 못하는 남자 아이들은 TV, 영화, 심지어 비디오 게임 같은 대중 문화속에서 불건전한 역할 모델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됨을 지적하면서, 아이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부모의 몫, 어른들의 역할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한다.

이 책 역시 밑줄을 많이 그으면서 읽은 책이다. 남자 아이들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제시된 사회적 변화의 관점에서도 보아야 함을, 이런 책을 통해서가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 어느 책의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맞는 말이었다.   

 

* 책 내용 중, 69쪽의 '편도선'이라는 용어는 글의 앞뒤 문맥으로 봐서 뇌의 한 부분인 amygdala를 번역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amygdala는 보통 우리말로 '편도체' 라고 번역된다. '편도선'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목구멍의 tonsil을 떠올리기 때문에 편도선보다는 편도체라고 표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 133쪽의 '투프츠 대학'이란 Tufts대학을 말하는 것 같은데, 보통 터프츠 대학으로 발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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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9-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읽으면서, 이게 미국 얘기라는 생각이 안들더라고...
나도 <편도선>그 부분 보면서 ?? 했는데.

hnine 2009-09-12 03:53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알게 된 책이다.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어.

하양물감 2009-09-12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리뷰면서 저도 관심가는 책이네요. 아들이 있다면 확실히 읽어야지 찜햇을텐데요..^^

hnine 2009-09-12 10:48   좋아요 0 | URL
아이쿠, 하양물감님. 감사합니다. 밑줄을 많이 그으며 읽은 책은 나중에 쓸데없이 리뷰가 길어지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