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이런 단어들을 기억할 사람들이 이제 점차 줄어가고 있겠지만,
한때 내게는 매일 하이텔에 접속하여 시간보내는 것이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결혼 전이었고, 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니긴 했으나 이것이 내 길이란 생각이 도저히 안드는 것이 모든 다른 고민의 원인 제공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앞으로 무엇을 부여잡고 살아야 하나 막막했던 것은,  20대 후반 그 당시만 해도, 산다는 것은 뭔가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하루 하루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저냥, 남들 다 하는대로 하며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혹시 내가 마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 것도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지치게 만들고 있던 시기였더랬다.
그때 내가 회원으로 있던 하이텔 동호회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알고는 매일 채팅방에서 그들과 마음을 열듯 말듯 하며 나누는 대화로 나는 그나마 나의 팽팽해진 신경줄을 다소 느슨하게 이완 시킬 수 있었다. 그러다가 친해진 몇몇의 사람들과는 오프 라인으로 만나기도 하고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 연락하며 지낸 경우도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온라인 상에서 사라지고 말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면서 궁금함과 동시에 허무함을 이겨내느라 더 우울해지기도 했었다. 내가 그들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면 친구를 잃은 아이가 된 기분, 딱 그런 기분이었다.

알라딘을 알게 된 것은 미국에 있는 동안 알라딘US에서 한국책을 주문하면서 부터였다. 미국에서도 한국책을 주문할 수 있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리 많은 책을 주문할 형편도 못되면서 매일 사이트에 들어와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덜었다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다가 정작 서재을 오픈한 것은 한국으로 들어온 후였다. 알라딘 사이트에 그렇게 들락날락하면서도 한번도 서재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안써지는 페이퍼를 써내느라 책상에 앉아 머리를 짜내고 있던 중 서재가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이 서재는 벌써 올해로 5년이 다 되어간다. 또 많은 사람들을 온라인 상에서 알게 되고, 그 분들로부터 감동, 위안, 격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따뜻함과 힘을 받으며 친분을 쌓아가고 있지만, 어느 날 또 누군가가 갑자기 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예전 하이텔 동호회에서의 경험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물론 서운하고 허무하고 기운빠진다. 그리고 슬프기도 하다. 그러면서 안그런 척 한다. 안그런 척 하면 정말 안그래질 것 같아서. 또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것도 되도록 안하려고 한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고, 안만나지는 사람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그대로 좋은 사람들 아닐까 해서 이다. 

글이 그 사람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꼭 그 사람 그대로 나타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보는 다른 분들의 말씀을 봐도 그렇고, 내가 다른 분들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늘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읽는다. 매우 까칠한 느낌의 글을 읽으면서도 이 사람은 정작 알고 보면 소심하고 여린 사람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반면 아주 여리고 마음 다치기 쉬워 보여 나도 모르게 나서서 토닥거리게 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의외로 강하고 다부진 면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심 (無心) 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무심이 아닌 것이다. 

진짜 '무심'하기 위해서,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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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9-02 06:49   좋아요 0 | URL
님 서재로 답글 달러 갑니다~ ^^

하양물감 2009-09-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립네요. 저는 나우누리를 사용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친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있고, 거기서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했지요....
사실, 피시통신이나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만 그런건 아니니까요. 현실에서도 어느날 갑자기 사람지는 사람, 연락을 끊는 사람이 많잖아요.

hnine 2009-09-02 06:58   좋아요 0 | URL
와, 하양물감님 반가와요. 나우누리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군요 ^^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지는 데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무슨 일인가 싶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상미 2009-09-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에 몰입했던 시절이 있다가 ,나도 요즘은 가끔씩 글을 올리고 있어

hnine 2009-09-02 16:10   좋아요 0 | URL
그러면서도 정이 참 많이 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