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을 '멕시코 이민 가족 이야기', 혹은 '멕시코 빈민가 이야기', 이렇게 붙였더라면 어땠을까. <망고 스트리트>라는 제목에서 사람들은 말랑말랑하면서 인간미가 흐르는, 사람사는 따뜻한 이야기를 짐작하며 쉽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용은 첫줄에 썼듯이 멕시코에서 미국이란 나라로 이민와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며 어떻게 한번 발 붙이고 살아볼까 애쓰는 가족들이 모여사는 곳, 즉 망고 스트리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이 책의 화자는 누가 들어도 멕시코 계통 이민 출신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에스페란자'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이다.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되고, 내가 사는 집이라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을 허름한 집에서 산다. 동생들을 돌보며 학교에 다니고, 이웃 친구들과 뛰어 놀기도 하는 대체로 천진한 소녀이지만, 그러면서도 늘 나만의 친구를 갈망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친구란 내 비밀 이야기를 몽땅 해 줄 수 있는 대상,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농담을 금세 알아들을 수 있는 대상이란다. 그때까지 나는 닻에 매달린 빨간 풍선이라면서 (18쪽). 결국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그들 밖에 없다' 로 시작되는 글에서 그녀가 가리키는 것은 야윈 네 그루의 가로수였다.

   
  이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이곳에 있는 나무 네 그루. 시에서 마지못해 심어 놓은 초라한 네 그루의 가로수. 그들의 힘은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다. 거친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잡고 격정적으로 하늘을 물어뜯으며 자신들의 분노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들 중 하나라도 자기 존재의 이유를 잊게 된다면 그들은 화병 속의 튤립처럼 서로에게 나약해진 팔을 걸고 이내 시들어 버릴 것이다. 견뎌야 해. 견디고 또 견뎌야 해.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삶을 키우는 나무 네 그루. 언제나 발돋음을 하며 어딘가에 도달하기를 잊지 않는 네 그루 나무. 살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는 나무 네 그루 (136쪽)  
   

가난에서 오는 무기력함과 때로는 절망감, 막연한 곳에의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에스페란자가 기본적으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끄지 않게 하고 늘 세심하게 관찰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웃들의 이야기 들로 엮어낸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 자체가 곧 여러 나라로부터의 이민의 역사이기도 하고 지금은 어쨌든 풍요한 자본주의 국가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있지만, 얼마나 많은 '망고 스트리트'가 그 거대한 땅덩이의 곳곳에 보이게 또는 안보이게 진을 치고 있는지. 자기가 숨쉬고 있는 나라의 풍요를 공유할 수 없어서 더 절망스러운 사람들,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도 어떻해서든지 고향을 떠나 새로이 시작한 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보려는 사람들의 힘든 하루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산드라 시스네로스는 시카고의 멕시칸 거주 지역에서, 멕시코계 미국인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긴 했지만 어쩔수 없이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속했던 그녀는 대안학교에서 낙제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이 책 <망고 스트리트>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등단하였고 이 책은 미국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 12개국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고 한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은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떠올랐다. 그리고 느낌은 좀 다르지만 우리 소설 중의 <원미동사람들>도. 모두 주류로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으로서의 삶이 그려진 소설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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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2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민자,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군요.
망고 스트리트로 이름지어진..
저도 서평도서로 온 '페트로폴리스' 읽고 있는데
러시아 이민자의 미국생활이 담겨있어요.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가고 자꾸 끊겨요.ㅎ

hnine 2009-08-28 05:27   좋아요 0 | URL
자신이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흔치 않은 경우이고 대부분 아웃사이더로서 산다는 것은, 더구나 빈곤의 문제가 함께 할 때에는 고독하고 고난한 삶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한참 꿈과 희망을 키울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그 감수성까지 더해져서 세상을 보는 어떤 특별한 눈을 키우는 것 같고요. '페트로폴리스'가 그런 내용이군요. 제목이 <망고스트리트>보다 덜 말랑말랑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