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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 -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아이 마음과 소통하는 법
에다 레샨 지음, 김인숙 옮김 / 푸른육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도 그대로이다. 'When your child drives you crazy'.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때'란 우리말 제목은 그러니까 번역본으로 나오면서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따로 붙여진 제목은 아닌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행복도 크지만 또 그 기쁨과 행복을 주는 바로 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순간 엄마를 그야말로 미치게 할 정도로 화나게 하는지도 알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화가 날 지언정 그것이 아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아이는 단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했을 뿐이다.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 보란듯이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시기가 아직 아닌 아이들의 어떤 행동이 결과적으로 엄마를 화나게 했을 때에는 늘 말하듯이 그 행위 자체만 문제 행동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나타내는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머리'와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요점은 그것인데 400쪽이 넘는 분량의 이 책에서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하나의 요점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 육아라면, 하나의 확실한 정답이 있는 것이 육아라면 아마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 이야기들로 이 두터운 분량의 책이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보면 바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문제가 불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육아가 꼭 아이를 키우는 것인가? 육아란 아이를 통해 이미 다 자란 것 같은, 이 엄마가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라는 것도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래서 육아책이 이렇게 두터워 질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거짓말이라는 행위 하나를 봐도 아이들이 하는 거짓말은 어른이 하는 거짓말과 동기부터가 다르다고 한다. 아이의 동기는 현실에 대한 이해 수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가 헷갈리는 상황에서 상상력과 구분이 힘들게 꾸며대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처음부터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연관지어 야단치기 보다는 거짓말로 인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신뢰의 개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는 편이 낫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의 잔소리가 많이 가는 것 중의 하나인 버릇없는 행동에 대한 것도, 버릇없는 행동과 '나쁜 아이'를 연관지어 야단을 치지는 말아야 하며, 예의바른 행동은 아이의 행복감과 안정된 정서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내 아이가 행복한가'를 관심있게 살펴야 한다.
사실, 아이의 어떤 행동을 심하게 야단치고 있을 때, 지금 내가 아이의 그 행동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 야단을 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를 기회로 엄마된 나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 봐야 한다. 그동안 감춰져 있거나 자신도 모르던 분노가, 내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내가 분출하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존재 앞에서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폭발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절망하고 무력해질 것이 아니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해나간 다는 것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편이 낫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남의 말에 귀기울이며, 책을 읽고, 고민하는 것, 이런 과정들은 부모가 된 이상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일생을 두고 노력해야할 중요하고도 가치있는 일 아닐까. 그래서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건 어떻게 보면 내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 중에서 어떤 작은 변화라도 생긴다면 감사할 일이고, 어느 한가지를 위해 중단없는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다. 내 자신이 얼마나 모자라는 존재인지를 알고 있기에.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듣는 잔소리중 제일 많이 듣게 되는 것 중의 하나,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이 소리를 들으면 벌써 신경이 곤두선다. 엄마도 인간인 이상, 항상 일관성 있게 행동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어찌 이리 무지막지한 요구가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진단 말인가.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앞 일을 예상할 수 있고, 사람들이 모두 똑같을 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육아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이 책 중의 말이 그래서인지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엄마도 잘 못 행동할 때가 있고, 실수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또 늘 똑같은 기계처럼 행동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목표를 세워 묵표에 맞는다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아이가 생기 넘치고 호기심 왕성하고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인간은 늘 똑같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감히 말한다. 피임의 방법이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쉬워지고 부모가 되는 것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 되어가는 시대에, 부모가 되어 아기를 갖는 것이 기쁘지 않다면 아예 낳지 말아야 한다고. 그게 올바른 생각이라고. 아기를 낳고 키우며 얻는 기쁨은 요즘에 다들 생각하는 기쁨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갖고 싶은 것을 얻고, 자기가 원할 때 원하는 일을 하고,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 화가 나거나 조급해 하거나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이에게서 얻는 기쁨은 아닐거라고.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면서 '내가 아이 키울 때는 말이다~' 라며 어떤 조언을 들려줄 어른이 옆에 없다. 예전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 않으니 시행착오의 여지도 없다. 그야말로 한번 잘못하면 꽝이라는 생각에 아이 키우는 부모는 늘 조바심이다. 육아책은 아마도 끊임없이 나올 것이고, 그 소리가 그소리네 어쩝네 하면서도 아마 나 같은 사람은 계속 그런 책을 끼고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