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에 빠진 아이 상상도서관 (다림)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지음, 리키 블랑코 그림, 김정하 옮김 / 다림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멀쩡히 길을 걸어가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구멍에 빠지는 사건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자연스런 반응으로 아이는 구멍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구멍이 몸에 꽉 조여들어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도움을 청해보지만 아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유일하게 아이의 말과 상황을 이해한 것은 집없이 떠돌아다니는 개와 넝마 행색의 거지뿐.
작가의 아이디어와 비유가 뛰어난 작품이다. 이미 파져 있던 구멍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 구멍은 아이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는 것. 겉으로 표현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아둔 채 혼자 앓고 있는 고민과 걱정, 그런 것들에 이를테면 발목 잡힌 상황을 구멍에 빠진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스스로 만든 구멍이기 때문에 그 구멍에서 헤어나오는 것 역시 누구의 도움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데, 이 책에서 작가는 '생각'을 함으로써 그 구멍에서 빠져 나올 힘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왜 구멍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구멍에 빠질 때의 상황을 잘 되돌아 보고, 그 때의 자신의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있었는지를 잘 분석해보라는 것이다. 즉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인데, 원치 않게 우리가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든 상황, 우울, 불안, 공포, 딜레마,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든, 그것을 해결하는 힘은 바로 솔직하고 진지한 자기 성찰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 저기 도움을 청해보지만 결국 그런 것들은 달리 큰 역할도 못함을, 그래서 기대할 것이 못된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던져주고 이야기를 끝맺는다.
구멍에 빠진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각계 각층의 인물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자기 멋대로 상황을 해석하여 기사로 써내는 기자나, 적당한 타협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정치가, 지옥에 빠졌다면 도와주겠지만 구멍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성직자의 묘사가 날카롭다.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직접 도와주진 않았지만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바로 같은 경험을 겪어본 사람이라는 것, 구멍에서 빠져 나오고 나자 자신과 대화가 가능하던 떠돌이 개의 말을 더이상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등, 책 내용 전체가 비유와 상징의 복합으로 보여진다. 그것들을 통해 이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구멍을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며,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09-04-2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제게 보내주신 님, 감사드려요. 잘 읽었습니다.

하늘바람 2009-04-24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리뷰 멋지네요^^

hnine 2009-04-24 06:12   좋아요 0 | URL
^^

2009-04-24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