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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쏴라 -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숭산행원 지음, 현각 엮음, 양언서 옮김 / 김영사 / 2009년 3월
평점 :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떤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동시에 그 외 다른 종교에 대해 없던 벽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종교를 갖는다는 것 자체부터 마음이 불편한 나 이지만, 종교 관련 서적 읽기를 종종 하는 것은, 종교로서 라기 보다 배움의 목적으로 읽는 종교 서적들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말이다.
불교 관련 서적들은 특히 더 그렇다. 불교가 어떻게 해서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았을까 나의 수준으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불교는 참으로 개인적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어울림, 단체 행위, 포교, 이런 것 보다는 너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마음을 닦으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도중 어떤 때에는 어떤 철학 서적을 대할 때 만큼이나 이해가 어려울 때도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과연, 대중을 상대로한 종교가 이럴 수가 있는가 의문이 들곤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류를 구원하고자한 예언자도 아니요,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자고 설법한 적도 없다. 그저 네 마음을 비우라고 말할 뿐. 모든 것은 네 마음이 짓는 것이니, 네 마음에 비친 다른 것들로 번뇌하지 말고, 그렇게 비추이는 마음을 보고 들으라고 말한다. 이렇게 소극적이고 허무하게조차 들리는 설법들이, 우리 속인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종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까. 오히려 종교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닐까 하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좋다, 나쁘다를 가리고 판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라고 한다. 하늘은 한번도 파랗다고 한적 없고, 내 이름은 하늘이라고 한 적 없다.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히고, 파랗다고 하는 것일 뿐. 생각 이전의 생각으로 돌아가라는 '무념 (無念)' 이란 말이 본문 중에 많이 나오는데, '무념 (無念)' 이란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을 비워냈음을 뜻하는 것이며, '무득 (無得)'이란 얻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진정 깨달았다는 뜻이 된다. 우리가 결국 깨달아야 할 것이 다름아닌 '공 (空)' 이라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나?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이 일체 끊어진 마음이다. 모든 생각이 끊어질 때 마음은 텅 비게 된다. 텅 빈 마음 상태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계산기를 사용하려면 C단추를 먼저 눌러야 한다. 화면에 0 이라는 숫자가 뜨면, 0 곱하기 2도 0 이고, 1,000 곱하기 0도 0 이다. 분노 곱하기 0도 0 이고, 욕망 곱하기 0도 0 이다. 마음이 0의 상태로 돌아가면 모든게 0 이 된다. 모든 게 텅 비게 되면 마음은 텅 빈 거울과 같이 되고, 그 마음은 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비추게 된다. (81쪽)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라. 생각을 비우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따지지 않고 그 영화 보는 일에만 몰두하듯이, 나와 영화가 하나가 되어 안과 밖이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상영 전과 후에는 늘 따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선(禪)'은 바로 이 영화 관람 같은 것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 '관(觀)'이라는 책을 읽고 또 읽고 한 적이 있다. 관, 본다는 것. 내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만히 집중하고 들여다 보는 것 말이다. 내 마음을 억누르려 들지도 말고, 왜곡시키지도 말고, 남에게 일부러 내보이려 들지도 말고, 내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데 집중하며, 일상에서 마음을 찰나 찰나 어떻게 지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책을 읽고 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채워졌는가, 아니면 비워졌는가.
그 생각에 집착함 부터 버려야 옳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