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다 본 후의 느낌은 인간 승리도 아니요, 사랑의 힘도 아니요, 자본주의의 한 끝을 보았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어느 한 끝 말이다. 욕조를 지폐로 가득 채우고 들어가 '살림 (Salim)' 이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 동생 '자말'은 퀴즈쇼에서 밀리어네어의 행운아가 되고, 사랑의 여인과 재회한다.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그의 영화로 내가 처음 본 것은 <쉘로우 그레이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대니 보일은 거의 젊은 세대들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가 나왔던 <비치 (The Beach)> 역시 그의 영화 다웠다 ; 엽기적 요소와 섬세한 감성이 펄펄 살아있는, 삶을 미화시키기보다는 충격을 줄망정 리얼하게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한 -'대니 보일적'이라고 내 맘대로 부르곤 하는- 그런 스타일 말이다.
이 영화 <슬럼독 다이어리>로 또 한번 영화계의 상들을 휩쓴 이 사람.
원작이 워낙 탄탄한 명성을 얻은 바 있어 (비카스 스와루프의 'Q & A') 수상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꽤 있나보다. 가령 영화 속에서 자말과 라티카가 만나기로 한 장소 '빅토리아 역'은 런던의 기차역 이름이기도 하다든지, 'underground' 라고 쓰여있는 지하철 표시도 런던의 것과 똑같아, 주인공들의 무대가 언제 영국으로 바뀌었나 잠시 혼동되기도 했었다.
다 보고 나서 어떤 따듯함과 위안을 얻고 나올 그런 영화는 아니라고 하겠다. 누가 이 사람, 대니 보일의 영화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랴. 대니 보일을 느끼기 위해 봐야할 영화 라고 말하면 몰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