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딸과 함께 유럽을 걷다
김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여행기 읽기를 좋아해서 그동안 읽어본 여행기들의 종류도 참 여러가지인데, 혼자 여행이 제일 많았고, 때로는 전가족이 함께 한 여행, 아빠와 딸의 여행, 친구와의 여행,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떠난 여행이 있었는가 하면 이 책 처럼 모녀가 함께 떠난 여행도 있다. 마흔을 넘긴 싱글맘 엄마가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데리고 떠난 60일 간의 유럽 여행. 읽다보니 첫 유럽 여행도 아닌 것 같음에도 이렇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실수 연발, 고생이 끊이지 않는 여행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6월에 떠나 아일랜드,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이렇게 9개국을 여행했는데, 철저한 예약 주의인 듯 하지만, 길 찾는 데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듯한 저자는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는 것부터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걷기 싫어하는 딸을 데리고 싸워가면서. 나이를 속이고 승차권, 혹은 입장권을 사려고 하다가 당한 망신 얘기 하며, 영문과 출신임에도 언어가 안 통하여 벌어지는 답답했던 상황들, 의견이 엇갈려 저자의 표현 그대로 하루도 싸우지 않고 보낸 날이 없었다는 딸과의 옥신각신, 기차 놓쳐 허둥댄 얘기, 뭐 잊어버려 낭패 본 얘기, 마지막 경유국인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돈이 다 떨어져 파리 주재 외환 은행까지 찾아가 사정해도 안 되어 조마조마한 얘기 등등. 여행기엔 어디에나 포함되어 있을 그런 정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읽어넘기기엔 좀 빈도와 정도가 심하여, 앞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이런 여행이 되면 안될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여행기중 가장 고생스런 책이 아닌가 한다.
소설도 몇 편 발표하여 수상 경력도 있다는데 저자의 이름이 내겐 생소하다. 좋은 글, 멋진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램이 이 책 중에도 여기 저기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녀에게도 이렇게 무리한 여행을 떠나게 한 어떤 이유와 기대가 있었을 터인데, 동행한 딸도 꼭 같으리란 법은 없었을 것이다. 한창 동방신기의 노래에 심취해 있고, 어느 숙소엘 들어가나 TV 뮤직 채널 앞에 앉아 있기를 좋아하는 딸과 이 엄마는 얼마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까, 또 얼마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충분한 대화가 오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는 곳마다 좋아하는 미술관, 박물관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들러 그곳의 작품에 대한 경탄스러움을 이야기하다가 돌연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른 화제가 나오고, 다시 작품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가 아니라 거기서 또 다른 화제로 뛰어 넘는 식의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로 인하여, 읽으면서 좀 정신이 없기도 했다.
다 읽고 나니, 이 책에 실린 어느 곳에 가보고 싶다는 희망보다는, 과연 저자는 이 여행으로부터 기대한 것을 얻었을까, 엄마가 아닌 딸이 여행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되었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