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시절이었다. 딸아이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5년 동안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별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누나보다 한참 어린데다가 미국이 처음이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아내와 나는 그런 아들이 걱정돼 가끔 학교를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고 올 뿐이었다. 한번은 학교를 갔는데 마침 체육 시간이었다. 아들이 다른 건 몰라도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며 지켜 보았다.
아이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잘 노는가 싶었는데, 아들은 곧 무리에서 빠져 나와 스탠드로 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편을 갈라 시합을 벌였다. 운동은 잘해도 말이 안 통하니 승패를 따지는 게임에는 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들은 시합 내내 풀이 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우리애가 일찍 세상을 겪는구나.' 생각하며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며칠 후, 나는 아들과 함께 근처 공원으로 운동을 나갔다.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놀다가 끝날 때쯤 아들의 등을 쓸어줬다.
"힘들지?"
"응?"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도 옛날에 그랬어. 좀 있으면 괜찮아져."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부모님께 걱정 끼치는 것도 싫고, 자존심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실은 많이 힘들었을 터. 아빠가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건네자 서러움이 한번에 터져나왔던 것이다.
"아빠도 힘들었어?"
"그럼. 아빠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빠는 대학교도 졸업하고,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왔는데도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그럼 알겠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마음을 여니 아들도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눈물을 닦고 씩씩하게 말했다.
"아빠 내가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까 걱정 마. 대신 엄마랑 누나한테는 비밀이야."
아들은 그렇게 낯선 땅에 적응해 갔다. 아들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연 것은 내가 먼저 아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일로 자녀와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먼저 어깨에 힘을 빼고 솔직해지는 것이라는 그 단순한 진실을 말이다.

 

 

-- 내가 좋아하는 문 용린 교수의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쓴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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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0-0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언제나 노력하시잖아요 다린이가 알거예요

hnine 2008-10-03 14:01   좋아요 0 | URL
'이해하다'란 뜻의 영어 단어 understand 가 under + stand 라고 하지요. 나를 낮추고 마음을 열때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고요. 머리속에 있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기까지가 또다른 수행이네요. 하늘바람님 혹시 이 책 읽으셨어요? 안 읽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