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 기도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들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정 호승 詩集 <포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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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의자,

그리고

기도,

저녁에 드리는

기도

.....


 

시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읽으면서 문득 이 음악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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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07-27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니 그냥 좀 슬퍼지네요. 좀 의장 앉으려고 헀던 내 모습들이 떠올려지고 의자가 되려고 하니 힘든 마음도 들고~
마음에 점하나 찍어주는 시네요. 님
잘 지내시죠

hnine 2008-07-27 05:30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의 의자가 되어주는 일.
쉬운 일은 아니지요.
오늘 어떤 노트를 펼치니 맨 뒷 페이지에 제가 이 시를 써놓았더군요.
도서관에서 이 시집을 읽다가 옮겨 적어놓았던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