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한 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문학동네 2004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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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8-07-0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이시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시중에 하나예요. 그러게요. 정말 우리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일때 필요한건 괜찮다라는 말한마디가 아니였나 해요. 이곳에서 한강의 시를 보게되니 기분이 무척 좋아져요. 저는 방금 오븐주문했답니다. 님이 말씀해주신것을 고려해서 컨백스오븐으로 아침에 결제를 눌렀는데, 빵 만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지켜봐주세요 나인님...
즐거운 하루 되시길요^^

hnine 2008-07-09 11:44   좋아요 0 | URL
아~ 춤추는 인생님 댓글 보고 이제 생각 났어요!
언젠가 어떤 분 서재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어떤 분 서재인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나는 몇 구절로 검색해서 찾아 올렸지 뭐예요. 이제 생각 났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시 알게 해주셔서 ^^
드디어 베이킹의 세계로 오시는군요. 저도 뭐 조금 일찍 시작해본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분명히 즐거움이 있답니다.

마노아 2008-07-0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냐고 물어봐줄 때보다 괜찮다는 한 마디가 더 위로가 될 때가 분명 있지요. 말없는 포옹도 그래서 힘이 되구요. 시가 참 좋아요. ^^

hnine 2008-07-09 17:12   좋아요 0 | URL
같이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습관적으로 왜그러냐는 말이 먼저 입에서 나오지요.
괜찮다는 말, 영어에서는 너무 흔하게 쓰여서 식상했었는데, 그게 참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