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
김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음악책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마 전문적인 음악 서적까지는 안 될거라는 겸손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전문성의 여부를 떠나서, 음악 이야기는 음악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인 감정이입이 무척 많이 들어가 있는 글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시도 사람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 적이 없다는 말에서도 보이듯이, 사람과의 관계, 그 사이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듯한, 굉장한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아닐까. 이런 사람에게 음악은 정말 숨통일 수 있다. 혼자서 빠져들수 있는, 무한한 감정의 세계, 카타르시스의 세계로의 입구 같은 것일테니.
아주 지긋지긋한 젊은 시절을 보내며, 지긋지긋한 사랑도 해보고, 그 정도의 가난도 겪어보았다는 이 사람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더 깊어졌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봄 햇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은 부디 하지 마시기를. 시간의 바깥에 나가 우두커니 서 있는 저 공원의 노인, 저 상심한 청년, 저 매 맞은 아이에게 봄날의 햇살은 희망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기를. (54쪽)

이런 시선으로 그가 한시도 생각하지 않는 적 없다는 사람을, 주변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오랜 경륜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의 딱 떨어지는 글솜씨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부부란 비적대적 모순관계의 전형적인 것.(75쪽)
음악은 언어와 사고로는 번역되지 않는 순수 추상의 세계 (117쪽)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뚫어져라 읽은 부분은 피아니스트 김 용배를 언급한 대목이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그 이름을 뜻밖에 대하고는 잠시 가슴이 멍 해졌다. 불편한 다리로 무대에 오르던, 조용하지만 다부진 인상의 그가 보여준 연주는 얼마나 격정적이었던가. 같은 말을 저자도 하고 있었다. 또, 영화 <조지아>를 각별히 여기는 그의 감상문 하나로도 저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평을 이렇게 분석적으로, 잘 썼다니. 이 사람 자체가 그런건가, 글을 쓰는 솜씨라고 해야하나.
부분 부분, 조금만 절제하며 썼으면 하는 곳도 많이 눈에 띄어 거북한 마음이 살짝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솔직했으니, 좀 과장스럽게 느껴짐은 그의 감상적인 성향때문이지 의도적인 부풀림은 아닌 것 같다. 음악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 그의 일상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은 이제 사양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첨단의 음악은 아니라고.
본문중에 나오는 그 많은 음악들중 읽으며 메모해 놓은 곡은 딱 한 곡. 바흐의 <악투스 트라지쿠스, BWV 106>. 칸타타 제 106번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되도록이면 칼 리히터 본을 들으란다.
이 책의 리뷰는 이런 시간이 아닌, 새벽에 쓰고 싶었는데, 그만큼 미루고 있기 싫은 마음에 지금 후다닥 올린다.
마지막으로 그가 영화 <조지아>감상문 끝에 붙여 놓은 그의 자작시.

이제 천국은

죄에 의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진창에 뒹굴어 가벼운 육신
이제 천국은 살아갈 나날을 기다리지 못하여
천사들만 살기로 모의한 나라
천국의 천사들의 유쾌한 합창
벌떼처럼 달려들어 꿀 먹는 나라
꿀처럼 단잠에 취하는 거기
죄에 의해서 편안해지고
진창에 뒹굴어 가볍고 가벼운
아, 아프지 않은 천국

참 별스럽다.

그의 당부대로, 이 책은 음악책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저자가 무엇에 대해 쓰든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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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4-1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아서, 이사람 책을 다 샀더랬어요. 가장 최근에 나온 나는 왜 나인가 뭐인가 하는 책은 비슷한 어조였지만 실망스러웠고, 그런고로 또 다른책 나의 레종데트르는 보류중이에요. ^^ 이 책,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는 참 좋지요. 그지요?

hnine 2008-04-20 00:16   좋아요 0 | URL
예, 좋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