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터키편, End of Pacific Series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네살 아들을 두고 있는 30대 엄마가, 그 네살바기 아들을 데리고 한달 여 동안 터키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책으로 엮었다.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은 저자의 마음이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가 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터키라는 나라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직 선진화 대열에 서있는 나라는 아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여행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려고 달려드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여자 혼자 네살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사치로 보여질 수도 있어 긴장을 풀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가며,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가며 버텨낸 한달이 그녀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카파도키아'라는 지역을 여행하는 일정을 잡는데  밴을 타고 하는 편한 그룹투어를 포기하고 굳이 더듬어 걸어가는 편을 택하면서 하는 말, '...밴으로 이동한다면 아이가 풀 더미에 숨어 있는 무당벌레가 모두 몇 마리인지 셀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다른 이들의 발걸음에 맞추느라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끌다시피 걸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관심이 있어 하는 것은 유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동물과 놀고 차를 갈아타는 여행의 과정들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것을 생략하고 커다란 볼거리에 집중하고 싶은 욕심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세 돌바기 친구의 작고 따스한 손을 맞잡고 더듬더듬 걸어가는 이 여정에서 큰 것을 바라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96쪽)'
어린 아이를 데리고 하는 여행, 그것도 너댓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여정에서 아이로 인해 벌어질 상황들을 예상하면서 엄마는 초조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엄마는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어떻하나 하는 조바심에서 벗어나, 그런 것들이 다 사람살이임을 깨닫고, 더 나아가 세상에는 잘 걷고 달리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절룩이는 사람도 있으며,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손을 잡고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121쪽).
이 책이 단순히 터키라는 나라의 여행을 위한 여행가이드로서의 책이 아니라, 아이 엄마로 살아가면서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되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유의 기록이며, 온전히 나에게 의지하는 한 어린 인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기록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 작고 느리고 지루한 것들을 반복해서 무비판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는 조금 따뜻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엔 남과 다른 것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남과 같은 것에도 진심으로 눈물이 나올 때가 있어요. 어머니라는 자리가 준 선물이죠. 그리고 따지고 보면 열심히 분석했던 시기에도 대단한 분석을 해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229쪽)' 백배 공감하며 읽은 대목중의 하나.
'우리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얻을수 없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 '무언가'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얻을 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오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245쪽)' 삶의 거친 여정을 살아오면서 그것이 그 사람을 단련시키며 성찰의 기회로 승화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은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참으로 안타깝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리라.

여행을 정말로 사랑해서, 이 책의 마지막도' 다음해 아이와 나는 사막을 보기 위해 아랍으로 떠났다.'는 문장으로 맺고 있고, 이 이전에도 아이가 두돌이 채 못되었을 때 이미 캄보디아로 떠났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이지만, 나는 이 책에서 여행을 형식으로 한 그녀의 고백을 읽었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다. 그녀의 고백이기도 하면서, 여행은 해보지도 못했지만 나 자신의 고백이기도 했을 그런 것들을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여행은 늘 나를 능가하는 현명함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인가? 누구에게나 그럴 것인가. 또 한권의 인상적인 책 읽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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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8-01-0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만으로도 충분히 얼마나 멋진 책인지 감이 팍팍 오네요.
그리고 제 세돌된 아이를 생각하니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도 감이 오고요. 어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나와 다른 세계와 조우하는 일 아닐까요?
생각이 더 깊어지고, 또 바뀌고, 또 도전하게 하고 , 반성하게 되고, 돌아보게 되고...
님덕분에 좋은 책 많이 알아가네요. 감사!
저는 제 위주의 여행만을 생각해서 애들이 크면 가자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말이죠.
유적을 보는 것보다 길가의 무당벌레를 세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여행할 줄 아는 엄마는 얼마나 멋진 엄마일까요?

hnine 2008-01-06 20:10   좋아요 0 | URL
미즈행복님, 이 책 참 괜찮아요. 나와 다른 세계와 조우하는 일이라는 미즈행복님의 말씀도 멋지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