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들뢰즈, 바디우와 함께하는 도시의 정신분석 1 - 과잉 도시 현대 도시의 철학적 모험
장용순 지음 / 이학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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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세 권의 책을 빌려오며, 이 책은 다른 두 책 먼저 읽고난 후 여유가 되면 읽게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처음 몇장을 읽어보자 펼쳤다가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내게는 아직 낯설기만 한 철학자들. 그 중에서도 더 낯선 이름, 들뢰즈, 라캉, 바디우를 내세우는 책이라서, 그리고 얼마전에 읽은 비트겐슈타인은 그나마 관심을 갖고 있던 철학자임에도 읽는데 쉽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당연히 이 책도 읽기가 쉽지 않으려니 했는데, 그런 생각을 미리 하고 있어서 그런지, 워낙 잘 쓴 책이라서 그런지, 읽는데 생각만큼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관심두지 않고 살던 분야를 처음으로 알아가는 맛까지 더해져 중간에 손놓지 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들뢰즈나 라캉, 바디우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은 아니다. 건축과 교수가 도시의 정신 분석을 목적으로 쓴 세권의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도시를 정신 분석한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었고 갈수록 원하는, 또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팽창하고 있는 도시라는 체계를 정신분석과 철학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보겠다는 의미가 되겠다. 

문명과 함께 도시가 생겨나고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한한 혼돈 (chaos) 으로부어 유한한 질서 (cosmos) 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기부터 시작한다.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푸코, 한병철, 들뢰즈, 콜하스, 벤야민, 바타유, 맑스, 라캉, 바디우.

혼돈이 가지는 무규정적인 흐름을 한시적으로 고착화한 것이 정신, 도시, 사회, 문명이라고 본다. 이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12)

자연, 혼돈, 흐름, 에너지 --> 인공, 질서, 규제, 기계

왼쪽의 자연, 혼돈, 흐름, 에너지 상태에서 오른쪽의 인공, 질서, 규제, 기제 쪽으로 가는 것이 '문명화', 반대 방향을 '붕괴'라고 도식화하야 그려놓았다. 도시는 이렇게 문명화와 함께 생겨난 것이다.

도시는 무규정적 흐름으로부터 인간을 방어하고 자연을 조절해서 활용하는데에 매우 효과적인 거대한 기계였다. (25)

자연의 무한한 흐름을 채취하는 것에서 시작된 도시는 점차 커져서 자체적 흐름을 만들어냈고 그 흐름이 점점 가속화되어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유한한 도시는 그 안에 무한성을 담으려했다.

도시가 커지고 인구도 늘어나면서 국가는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세밀한 규칙이 필요해지고 이것은 생산력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해진다. 그렇게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근대사회는 확장된 흐름을 법과 질서에 따라서 통제하는 사회가 된다. 근대 규율 사회의 탄생이다.


시대 연도 에피스테메 경제 사조 사회 구분 성격
르네상스 시대 1500-1650 유사성 대항해시대 봉건 해체기 종교개혁, 인쇄술의 보급
고전주의 시대 1650-1800 재현 상업자본주의 절대왕정 과학혁명의 시대
근대 1800-1950 역사 산업자본주의 규율사회 프랑스혁명 이후, 시공간적 확대
현대 1950- 흐름 신자유주의 성과사회 이동과 순환의 극대화

*에피스테메 epistime: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한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책에서 자주 언급이 되기 때문에 위의 표는 머리 속에 담고 읽는 것이 좋다.

근대 초기는 자본주의, 자유주의시대이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수정자본주의가 도입되어 정부의 개입이 시작된다. 현대에 오면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근대 규율사회에서 현대 성과사회로 진입한 시점과 같다.

푸코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근대 규율사회의 규범과 질서로 시공간을 통제하는 방식을 넘어선 신자유주의 사회의 보다 미시적인 통제를 말한다.

들뢰즈는 현대사회가 근대 규율사회와는 다른 '통제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근대의 규율사회가 닫힌 공간을 만드는 고정된 주형의 방식을 따르는 반면 현대의 통제사회 (성과사회)는 연속적이고 열린 공간을 만드는 변조의 방식을 따른다고 설며한다. 변조의 방식은 더 유연하고 촘촘하게 개인을 길들이면서 통제할 수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규율사회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성과사회, 피로사회를 제시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흐름을 분절하고 통제하는 규율사회, 20세기 중후반부터는 흐름을 무한히 흘러가게 하는 성과사회이자 피로사회다. 

피로사회에서 개인은 외부에서 주어진 법이나 규율이 아닌, 개인에 내재화된 법에 의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받는다는 성과주의에 사로잡혀서 과도하게 자기 자신을 혹사시킨다. 이렇게 우리는 긍정성 과잉의 소진증후군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왜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생겨났을까? 왜 엄청난 인구와 잠재력을 가진 중국에서 더 일찍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들뢰즈에 의하면 11세기 유럽은 봉건 체제의 위계 조직과 도시 간의 네트워크 조직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었고 14세기에 이르러 네크워크의 핵심 도시들은 더욱 분화된 네트워크를 이루며 생산력을 발전시켜 상업 자본이 발달해나갔던 반면 이슬람이나 중국은 중앙집권체체로 거대 제국을 형성하는데 집중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유럽이 원시사회의 코드화 사회에서 탈코드화로 나가는 동안 중극은 초코드화로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였다.


매끄러운 공간, 홈파인 공간

들뢰즈가 제시한 개념에 '매끄러운 공간(smooth space)'와 '홈파인 공간 (striated space)'가 있다. 생물학에서 수정란의 발생 단계를 연상해보면 쉬운데, 좌표를 표시하기 어려운 사막이나 바다는 '매끄러운 공간'이며 길과 필지로 구분된 도시는 '홈파인 공간', 즉 분화가 이루어진 공간이다. 매끄러운 공간은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는데 첫번째 의미는 바다, 사막, 수정란 같은 무한한 잠재성의 공간이다. 두번째로 매끄러운 공간은 자본에 의해 견고한 것들이 모두 녹아버린 세계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매끄러운 공간에 규범이나 규정성이 개입되면 그 공간은 홈파인 공간이 되는데, 홈파인 공간에서 흐름을 가르는 선들이 무수할 정도로 많아져서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 그곳은 마치 매끄러운 공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첫번째 의미의 매끄러운 공간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이지만 두 번째 의미의 매끄러운 공간은 새로운 억압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날 도시에 대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 날 도시에서는 마치 경계가 사라진 연속적이고 유연한 공간이 형성된 것 같지만 자유시장경제의 논리를 따라간 도시의 구조가 정말로 자유로운지는 의문이다. 신자유주의 성과사회는 개인이 억압을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환경 자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94)


가속화된 흐름이 만드는 장소

편의점, 은행, 패스트푸드 식당, 쇼핑몰, 터미널, 공항, 호텔 등 요즘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의 소비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능을 하는 건물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택배를 보내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은행에서 업무를 본다. 고속터미널과 이어져 있는 대형 쇼핑몰과 호텔. 매우 실용적이니만 특별히 기억되지도 않고 정체성도 없는 장소를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대향소비사회에 나타나는 특이한 장소들이라고 해서 '비장소 (non-place)'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성, 역사성, 관계성을 갖지 못하는 현대적인 장소들인데, 고속도로, 항공기 내부, 호텔, 공항, 철도역, 주유소, 편의점, 쇼핑몰, 아울렛 같은 장소들이다. 

이런 장소들의 특징은 흐름과 관련된다는 점, 그리고 소비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칸은 건축공간을 서비스하는 공간과 서비스 받는 공간으로 나누었다. 

현대에는 비장소에 대한 혐오와 열망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도시가 등장한 것은 물류와 자본의 흐름이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과시욕, 호기심과 결합하면서다.

비장소와 정크 스페이스 역시 유한의 공간에 무한의 흐름을 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 도시의 많은 문제가 무한을 유한 안에 재현하려는 이런 욕망 때문에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117)


한병철의 피로사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한다.

"안된다"는 억압이 신경증을 일으킨다면, "무엇이든 된다"는 과잉 긍정에 사로잡힌 정신병적 상태는 피로사회의 특징이다.

프로이드의 정신의학 관점에서, 리비도가 과도하게 억압되면 '강박증', 리비도가 억압을 뚫고 나와 신체의 증상으로 표현되면 '히스테리', 리비도가 대상에 투여되지 못하고 자아에 고착되는 것이 '우울증'인데, 한병철은 소진 증후군과 우울증을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질환들로 들었다.

과도하게 흘러가는 것과 과도하게 고착되는 것, 이런 대조적 현상은 도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고속도로, 기차역, 공항, 쇼핑몰 같은 흐름을 담당하는 시설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발생한 잉여가치가 축적된 사적영역인 초고급 주택, 빌라, 아파트, 클럽하우스가 건설된다. 전자의 시설들은 누구나 접근해 소비를 즐길 수 있지만 후자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즉 어디든 갈 수 있는 흐름의 과잉이 발생함과 동시에 흐름의 고착이 생긴다. 편집증적 장소의 나르시시즘적 리비도가 외부로 나오지 못하고 고착되는 것이다. (129)


좀비영화는왜 인기가 있을까?

영화속 타자의 유형 1단계는 밖에서 침략해온 외계인, 2단계는 에일리언. 내 몸속에 알을 낳고 몸속에서 자라다가 튀어나온다. 나와 타자의 경계가 애매하다. 세번째 유형은 좀비다. 좀비가 나를 물면 나는 좀비가 된다. 타자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한병철은 타자와 나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규율사회 vs 피로사회'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규율사회에서 인간은 법에 대항하며 타자와 맞서지만, 피로사회에서 인간 주체는 맞설 타자 없이 각자의 성과에 의해서 평가된다. 바로 공산권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습이다.

들뢰즈는 "현대의 유일한 신화는 좀비 신화이고 이 살아 있는 죽은 자 (undead)의 신화는 노동의 신화이지 전쟁의 신화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노동을 하는 현대 성과 주체의 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좀비 영화가 유행하는 원인이다. (145)

타자도 유토피아도 사라진 매끄러운 세계에서는 나 자신이 바로 잠재적 타자이다. (151)


들뢰즈는 자본주의가 흐름을 탈영토화, 탈코드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았다. 다만, 흐름을 재영토화, 초코드화한 것은 부정적이라고 보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재영토화, 초코드화에 의한 과잉 축적에 있다고 했다. 


이런 들뢰즈의 관점에 부응하며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흐름이 증가하는 것은 생물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보면서, 생명체에서 흐름의 확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혈류가 고착될때 발생하듯이, 정신 병리에서 방어기제로서의 자아는 필요하지만 자아에 리비도가 지나치게 집중되어 과잉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하듯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지점은 두 방식 사이의 중간이라고 했다. 적당한 규율과 억압은 정신을 안정시킬 수 있지만 과도한 초자아의 통제는 리비도가 지나치게 집중되어 과잉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규제는 경제를 안정시키지만 경제의 흐름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다.

규제가 최소화된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는 흐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 사회, 도시에서 경계를 적절하게 구성하고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데 적용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생물학적이고 생태학적인 관점이다. 우리가 새롭게 상상해야 하는 체계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생태학적 체계인 것이다. (193)


결국 우리가 찾는 답은 자연 생태계 속에 있나보다. 


건축도 원래 나의 전공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읽어보자고 집어 든 책이었는데, 3권 시리즈 중 첫권이라서 그런지 배경이 되는 철학적 이야기가 잔뜩이었다. 저자가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석, 박사도 여전히 건축 전공이며 현재도 건축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이렇게 자신의 전공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철학 이야기로 몇 권의 책을 내는 것을 보며 철학은 철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내다니.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지만 아예 소장용으로 한권 구입해서 맘껏 줄을 좍좍 쳐가면서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감히 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지 않던,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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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0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재밌겠어요. 좋은 리뷰 덕분에 좋은 책을 담아갑니다.

hnine 2026-08-01 15:04   좋아요 1 | URL
휴대폰 앱에서 열어보니 인용구 박스와 표가 제대로 나타나질 않는데,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 좋아요. 그동안 저도 모르게 제 관심 분야의 책들만 읽어오다보니 읽는 책들만 읽는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영역이 확장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그랬는데, 바람돌이님은 친숙한 내용일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