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지음 / 비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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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는, 고 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에서 인용한 이 책의 제목만 읽고도 어떤 생각이 떠올라 서둘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윤기. 신화학자, 번역가, 소설가로 소개되는 그에게서는 그만의 어떤 '멋'이 느껴진다. 꾸며진 멋이 아니라,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어찌 보면 고집에 가까운 멋 말이다. 학교 체제가 자신의 배움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를 뛰쳐 나오고, 그 이후 사회의 냉대에 맞서며 느낀 벽을 감당키 어려워 검정고시로 다시 학교에 들어가고, 자기 영역의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야기가 한참 더 풀어져 나갈 것 같은 도중에 글이 뚝 끝나고 만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서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이런가. 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묻는다고 한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쓰는 글이라면서, 마흔 다섯의 나이, 번역가로서 한참 주가를 올리던 그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가족을 끌고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개인의 힘은 자기를 바꾸어보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 변화에 적응하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충고한다. 위중한 어머니를 둔 상심한 지인에게 쓴 글에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자신의 어머니였음을 고백한다. 첫돌 지낸 후 아버지를 잃고 34년을 홀어머니 슬하에서 살다가 서른 다섯에 어머니를 여의고서 그는 어머니를 잃을 줄만 알았는데, 어머니는 마음 속에 계시니 잃은 것이 아니라면서. 내 아내는 내 아들 딸의 어머니이니, 지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여성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
괴팍스런 면이 없지 않아 보이면서도 자신의 수줍음을 털어놓는 사람, 나는 내 식으로 산다고, 나의 노래를 부르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남이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서 뭉클함을 느끼고 곧잘 운다는 이 사람.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올라갈 때 한눈을 팔며 가는 길의 꽃, 나비, 나무들 신경쓰느라 가던 길을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한가지 목표만 생각하며 올라가는데만 열중하는게 낫지...'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데에는 나 개인적인 경험과 거기서 오는 일말의 후회같은 것이 이리 저리 섞인 결과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뜻으로 붙인 제목이 아니겠지, 올라가는데 열중해서 놓친 많은 것을 이제사 발견하는 것에 대한 뒤늦은 안타까움에서 인용된 것이겠지, 그렇게 짐작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작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담판한'에 대한 글에서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음을 알았다. '...좌우 핼금거리다 세월만 축내는 것보다야 눈가리개 차는 것이 낫지. 길 잃고 헤매느니, 줄창 한 우물이라도 파는 담판한이 낫지...' (81쪽) 이 대목을 읽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일까. 그렇지요? 그래야 했던 것이지요?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는 참 멋진 사람이다. 내 마음속에 담아 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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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7-11-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그런 후회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그 나름대로 다른걸 얻지 않았을까요? 꽃과 나비, 나무라도 본거잖아요. 지나고보면 후회스러운 일이 많지요. 하지만 그것도 다 삶의 일부인 것 같아요. 후회하면서 사는게 어쩜 인생같아요. 후회할 일 없이 성공가도(?)만 달린 사람은 어째 훌륭해보이긴 하나 정감이 느껴지진 않아요.

hnine 2007-11-30 14:52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이것 저것 욕심을 내면 안되겠지요. 얻은 것이 있으면 놓친 것이 있기 마련이고요. 제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라기 보다는 좀 아쉬움이 남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