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6일자 한국 일보의 성지연 작가 글이다.

여기 인용된 백석의 시도 좋고, 본문 내용도 좋아서 남겨놓고 싶은데,

바로 내용을 옮겨 적는 대신 이렇게 링크를 걸어놓는 것이 저작권 법에 위촉되지 않는다고 해서  (https://blog.naver.com/hyeseongp/224178415565 : 저작권 관련 내용 포스팅) 

이렇게 링크만 걸어놓는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418170004031?dtypecode=pancode_opinion




외로움의 시대. 

외로움에 묻히지 말고 그 위를 건너 가고 싶다. 

다른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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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6-2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라 여겨 외로울 수 있지만, ‘외롭다‘라는 낱말을 까맣게 잊거나 모르는 탓에, 여러모로 헤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혼자‘와 ‘외롭다‘라는 우리말을 놓고서 다시 풀이를 해보면서 이야기도 하나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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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보든 ‘혼자’ 바라보면서 ‘함께’ 지켜봅니다. 와글와글한 모이거나 웅성웅성 떠드는 마당에 찾아갔더라도 ‘혼자’ 바라보면서 줄거리와 이야기를 읽어냅니다. 집에서 혼자 무엇을 들여다보더라도(영화나 영상이나 책을 보더라도) 우리집을 둘러싼 모든 숨결과 함께 살피면서 누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나 하나’로만 있지 않아요. 나무와 풀이 나란히 있고, 바람과 해가 함께 있습니다. 옷과 이불과 종이도 같이 있고, 집채와 도마와 그릇도 두런두런 있습니다.

‘혼자’란 ‘홀·홑’이라는 뜻입니다. 으레 ‘홀·짝’으로 나타내듯 ‘하나·둘’이자 ‘이곳·저곳’입니다. 또한 ‘나·너’와 ‘하나·함께’입니다. 그리고 ‘사람·하늘’과 ‘낱·다(모두)’이면서, ‘처음·끝’을 비롯한 숱한 삶길을 ‘홀(1) + 짝(2)’이라는 얼개로 그립니다. 홀짝은 ‘하나(1)·둘(2)’뿐 아니라 ‘왼·오른’도 넌지시 그리지요.

‘외롭다’라는 낱말은 ‘외’로 느낀다는 뜻입니다. ‘외’로 있거나 가거나 흐르기에 ‘왼’이라고 합니다. ‘외’는 ‘하나’이면서 ‘스스로’이고, ‘낱’이면서 ‘나’입니다. 그래서 왼길이란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길을 내듯 의젓하고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몸짓을 나타냅니다. 왼길로 먼저 스스로 혼자 나아가서 일구고 알아본 뒤에는, 오른길로 함께 자리잡으면서 가꾸고 돌보면서 즐겁게 지내는 보금자리를 이룬다고 하는 얼거리입니다.

하나이면서 스스로이고 낱이자 나인 ‘외’가 눈을 뜨기에, 나하고 나란하지만 다르게 피어나는 ‘너’를 느끼고 알아봅니다. 왼눈부터 뜨기에 오른눈으로 알아봐요. 왼길을 열면서 오른길을 마주 세웁니다. 나는 왼이라는 하나로 눈을 뜨고, 어느덧 오른이라는 또다른 하나인 너를 알아챕니다. 바야흐로 나랑 너는 ‘둘’을 이루면서 ‘우리’로 피어나고는, ‘함께’ 빛나는 ‘하늘’로 깨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먼저 외(왼·혼자·하나)인 ‘나’가 눈을 떠야 ‘오른(둘·함께·우리)’인 ‘너’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외(왼·혼자·하나)인 나가 눈을 안 뜨면 오른(둘·함께·우리)인 너를 도무지 못 보고 못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왼오른이라는 두 손과 두 눈과 두 팔과 두 발과 두 다리와 두 귀를 나란히 두면서 맞물려서 움직이는 길을 갑니다. 우리는 둘을 두루 둘러보면서 두레로 돕고 동무하면서 동그랗게 맺는 삶길을 걸어요. 누구나 먼저 외로워야(외로 있어야) 스스로 눈뜬다고 할 만합니다. 외로운(외로 있는)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하면 눈을 안 뜰 뿐 아니라 딴청을 하거나 딴짓을 하면서 샛길로 빠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