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하여 문과, 이과를 결정해야 할때,
현실보다 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천성이 있는 나는
나의 적성이 문과에 가까우냐 이과에 가까우냐를 생각하기에 앞서
과연 어느쪽 학문이 더 진리에 가까우냐 하는
정말 웃기지도 않은 명분을 생각하며 고민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은, 사람들의 말 재주에 의해 이것이 진리가 되기도 하고, 저것이 진리로 받아 들여지기도 한다고 생각, 그것은 너무나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진리일 뿐이며, 사람들의 얄팍한 지식에 의해 이것이 답이 되었다가 저것이 답이 되기도 하는 그 속성이 감히 내 맘에 안들었다.
반면 자연과학은, 사람들의 지식이 그에 못 미쳐 진리를 알아내지 못할 지언정 불변의 진리는 오직 하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것이 정말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결론! 나는 이과를 선택해야겠다! 두 주먹 불끈...
지금 생각하니 어찌나 창피하고 우스운지. 이렇게 문과 이과를 선택한 사람이 또 있으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나는 이과보다는 문과 쪽 적성임은 고등학교 2학년, 이과반에 들어가 이과 과목들을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금방 드러났다. 덕분에 2학년부터 성적 뚝뚝 떨어지고...편협한 사고의 댓가를 톡톡이 치뤘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직도 치르고 있나?

그때 내가 했던 생각,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즉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면이 곧 그 물체나 현상의 전체인 줄 착각하는 일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엄연히 일어나고 있으며, 설사 과학적인 실험을 거쳐 내린 결론을 가지고 발표되는 사실중에도 얼마나 헛점이 많던가.

예를 들어 '커피는 심혈관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들과 더불어, 그렇지 않다는 결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중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은 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왕이면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있는 논문을 한편 골라 발표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들은 그저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다. 양파를 먹으면 심장병을 예방하고, 심지어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한때 양파즙 붐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양파에는 혈액 응고를 방지하는 성분이 있어 확실이 심혈관계 질환에 도움이 되지만, 어느 한계 이상 넘어가면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쪽으로 작용하니, 너무 많은 양의 양파를 장기간 먹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다. 그런 것이 어디 양파 뿐이랴. 커피 속의 카페인도 그렇고, 마늘도 그렇고, 달걀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를 들으며 이동중이었는데 이숙영의 파워FM에서 어떤 음식이 뭐에 좋다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진행자의 멘트를 나는 그냥 흘려 들었다 (덕분에 벌써 그것이 무슨 음식이었는지, 어디에 좋다는 것이었는지 생각 안 난다 ^^). 옆에 있는 남편 보고, 평소에 골고루 잘 먹는게 제일 좋은건데... 이 한마디만 중얼거리고.

한 쪽을 보고 전체를 설명하려는 것, 이것도 알아가는 과정중의 하나이겠지만, 가려져 안 보이는 다른 면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물체나 현상은 대부분 하나의 얼굴만 갖고 있지는 않으므로. 사람 역시 마찬가지.
이러니 나는 언제나 우.유.부.단. 이름표를 달고 있을 수 밖에 없겠으나, 뭐, 우유부단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쁠 건 없잖아...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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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7-10-18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 가 생각나요 ^^

hnine 2007-10-18 07:38   좋아요 0 | URL
I've looked at clouds at both sides now, from up and down and still somehow~~
저도 좋아하는 노래인데 ^^
덕분에 오늘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