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어도
'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For those who are looking for
'home' even if there is 'house'
시집을 펴자마자 보게 되는 이 문장과 비슷한 대목이 시 '멜버른에서 온 편지'에 나온다.
난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해
왜냐면 여기가 내 집이 아니거든
근데 이젠 서울에도 내 집이 없어
우리 가족끼리도 다 뿔뿔이 흩어져 살잖아 웃기지?
이제 내가 가고 싶은 집은 없어 과거에 존재할 뿐이야.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
이런 시인의 말도 들어가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위트 홈에 대한 로망은 '행복'에 대한 염원만큼이나 추상적이고 일시적인 느낌일뿐, 그것이 살아가는 목표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는 시인의 말은 집에 대한 로망을 내려놓겠다는 뜻이 아닐까. 난 그렇게 읽었다.
우리는 가만히 누워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플라스틱 하우스' 중에서-
그래, 이것인지도 모르지. 이제 누가 행복에 대해서 물으면 이 싯구절을 인용해서 대답할까보다.
행복은 누군가와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 시간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네 죄가 내 죄가 되는 그런 삶은 더는 싫어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중에서-
네 죄가 내 죄가 되고, 내 기쁨이 네 기쁨이 되기도 하는, 그런게 가족이라고 옛날에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던가?
아니다. 네 슬픔이 내 슬픔이라고는 했을지언정 네 죄가 내 죄가 되는 것이라고는 안 했었지.
이 시집은 다 읽고도 책꽂이로 자리잡아 가지 않고 아직까지 내 책상 손닿는 곳에 두고 자주 들춰보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