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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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다 작가를 먼저 알게 되었다. 문학라디오에 초대 작가로 나온 이서수는 하고 싶은 말 많고 쓰고 싶은 것 많은 듯 질문자의 질문마다 솔직하게 얘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2014년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되고도 아무데서도 책을 내자는 청탁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 생계를 위해 택배, 북카페 까지 하면서 버틴 6년의 시간이 있었다. 작가는 그 시기를 '암흑기'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었을 인물 '이기동'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려서부터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기대와 다르게 외모도, 성적도, 능력도 어느 것 하나 뛰어난 것 없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학생으로 학교를 졸업한 이기동은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공모전마다 떨어져 소설가로서의 능력도 의심스럽던 차에 아버지 유품 속에서 아버지가 써놓았던 소설 초고를 발견하고 그것을 응모하여 드디어 등단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이서수가 그랬듯이 이기동도 얼결에 등단은 했으나 아무데서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백수로 시간을 보내면서 대필 작가에 지원하기도 하고 엄마가 하는 김밥집 일을 도와드리는 등 글 쓰는 작가와 무관한 일을 하며 절망도 낙담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낸다. 

학생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이기동은 알바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뽑아서 읽는게 낙이다. 그러다가 비록 청탁 들어오는데는 없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 맘대로 쓰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와 그의 음악은 이기동에게 일종의 아이오프너였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소리들도 존 케이지에게는 음악이 될 수 있었고, 악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침묵 조차 음악이었다. (이서수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책이 1961년 출판된 John Cage의 <Silence>이다.)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은 것도 음악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존 케이지가 있듯이 이기동에게도 남들이 아닌 나의 글을 써나간다는 소신을 가지게 하였다. 이 소설은 이렇게 존 케이지의 일대기와 이기동의 이야기가 병렬로 이어져 나간다. 존 케이지라는 레전드 격의 인물은 이기동과는 전혀 극과 극의 인물인 듯 하지만 이 둘을 작가는 독특하게 묶어놓는데 성공하였다. 

이기동은 자기의 원고를 포함하여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소설들, 낙선자들의 책을 전시해놓는서점의 주인이 된다. 이기동은 그렇게 자기만의 4분 33초를 연주하는 셈이다. 


이서수 자신이 말한 인생의 '암흑기'가 있었기에 존 케이지라는 인물과 그의 전위적 작품 '4분 33초'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자기의 소설의 세계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더라도 계속되는 삶의 연주라는 메시지로, 작가 자신과 독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그런 위로를 발견하고 거기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외모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모자란 극적인 인물 대신, 아무것도 특이사항이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살려간 것도 작가의 개성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므로.

특별히 행운도 비극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희망도 절망도 과장되게 그리지 않으며 자기의 살 길을 나름대로 찾아나가고 있는 이기동이란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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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9-27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서수 라는 작가, 저도 관심을 두고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hnine 2024-09-27 16:53   좋아요 1 | URL
추천합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한국 작가들 책을 자주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작가의 책은 다 찾아 읽고 싶어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만의 색깔이 느껴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