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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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생소한 작가와 책 이전에 위의 그림을 알고 있었다. 프란시스 고야의 <개>(the dog: el perro). 

전체 화면에 개 한마리가 전부인 그림이다. 그것도 개의 머리 부분만 그려서 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개의눈이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고독과 불안, 고립, 무력감을 나타낸 이 그림은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처음 본 이후로 머리 속에 박혀서 잊혀지지 않고 있던 차에, 이 그림을 표지 그림으로 하고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용과 무관한 표지 그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선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다.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1892년 브라질 북동부의 내륙 오지에서 16명 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이십대에는 기자로 활동했고, 문단에 등단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것 외에도 시장으로 일하기도 하고 공산주의에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감옥 생활을 하는 등 정치가로서의 이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1953년 세상을 뜨기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브라질 문학의 큰 줄기를 형성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 중 <메마른 삶 (vidas secas)>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사실주의적 스타일로서 브라질 북동부의 가난, 불평등, 사회적 문제들을 깊이 탐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심리적 통찰과 현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며 복잡한 심리묘사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소몰이꾼이었던 파비아누의 가족이 가뭄때문에 살 곳을 찾아 찾아 이주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비아누의 아내 비토리아는 작은 아이를 들쳐 업고 머리에는 트렁크를 이고 있다. 파비아누와  비토리아의 뒤에는 큰 아이와 강아지 발레이아가 따르고 있다.

걷다 지친 큰 아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일어나, 망할 놈의 마귀 같은 자식!" 아버지가 아이에게 소리쳤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그는 칼집 끝으로 아이를 때렸다.

아이는 몸을 웅크린 채 발을 구르며 떼를 썼다.

...

"일어나라니까, 빌어먹을 놈."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파비아누는 아이를 죽이고 싶었다. 무심한 그는 자신의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가뭄은 그에게 필요악처럼 보였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탓에 짜증이 났다. 분명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노정을 방해했고, 소몰이꾼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8쪽)

아들을 황량한 곳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 메마른 대지에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여정은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파비아누는 잠시 머물만한 장소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역 지주 아래에서 일하게 되는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항상 착취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무기력하고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전형적인 농민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족의 유일한 위안이자 충실한 동반자였던 애완견 발레이아가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에 걸려 고통 속에 가망이 없어보이자 파비아누는 아이들과 아내의 처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발레이아에게 총을 겨눠 죽인다. 가뭄이라는 자연의 가혹함 앞에서 인간은 더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속에 죽어간 발레이아의 모습이나 불확실하고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뭄은 언젠가 끝나리라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뭄에 더해 억압적인 사회 구조로 인한 착취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인간의 생존 본능, 그 본능으로 버티며 덜 메마른 곳을 향해 떠도는 삶은 계속된다.


행동과 심리의 사실적인 묘사가 극한 상황을 표현하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대로 대본으로 사용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한 문장 한 문장이 극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파비아누가 가족과 다름없던 개 발레이아에게 총을 겨눈 것은 그만 끝내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발레이아가 죽은 후에도 파비아누는 자주 발레이아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도 길을 떠나며 앞으로 도착할 알 수 없는 곳에 희망을 가지는 파비아누 가족은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그들의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


파비아누가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 하여 굳이 총을 겨눠 고통스런 상황을 끝내게 했던 발레이아.

고야의 <개>를 표지 그림으로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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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9-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습니다. 불행과 희망. 희망은 있는지 ... 아이를 깨우는 아버지의 말도 날키롭네요. 글 감사합니다. ^^

hnine 2024-09-13 04: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구름모모님,
저도 처음부터 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말이 너무 섬뜩하게 들렸어요. 인간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게 맞나봅니다.
책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금방 읽으실거예요.
오래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볼 수 있는 방법을 못찾았네요. 우리 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좀 늦게 알려진 감이 있지요. 우리나라 근대 사실주의 작가들 소설을 읽는 느낌도 잠시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