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개인이 살아온 얘기를 단지 한 개인의 역사로 보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것들을 수집하여 한 시대의 역사물, 아카이브로서 데이터화 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회고록이고 non fiction이다. 

저자 그레이스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미국인 아버지가 한국에 와있는 동안 만난 기지촌 여성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저자가 한 살 반, 오빠가 여덟 살 반이던 1972년, 아버지가 살고 있는 와싱턴주 (미국 서부) 셔헤일리스라는 작은 마을로 엄마와 함께 이주하였으니 저자에게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반은 미국인 아버지의 핏줄을 가지고 있는 외형이었지만 이민자를 혐오하던 분위기로 저자는 이방인이라는 의식과, 아메리칸도 아니고 코리안도 아닌 아메리시안 (americian) 이라는 이중의식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천성적으로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엄마는 딸이 학교에 잘 다니면서 인정받기를 마라는 마음으로 친구들이나 이웃을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딸에게는 꿈을 크게 가질 것을 강조하곤 했다.

제목 <전쟁 같은 맛>은 올케가 엄마에게 차려준 음식 중 유독 분유에는 손도 대지 않은 이유를 저자가 묻는 대목에서 나온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이웃에 한국 아이나 아내가 새로 미국 가족이 되어 올 때마다 엄마는 이들을 모국어로 환영했다. 김치 한통을 손에 들고 말했다. “함 묵자.” 같이 먹어보자.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 온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엄마는 김치를 담가 주었다매일 같이 먹고 요리하는 일이 우리가 남겨 두고 떠나온 사람들과 장소에 우리를 연결시켜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엄마는 이들이 잃어버렸거나 이들에게서 지워진 한국의 친족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행동에는 엄마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고 엄마는 이를 통해 살인적인 상황에 맞부딪치며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163-165)


한국에서 어린 아이를 입양하는 이웃을 보면 일부러 방문하여 한국음식을 만들어주기 도 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엄마가한 이웃이 어린 아이가 아니라 열일곱이나 된 여자 아이를 입양한 것을 보면서는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인간들은 애를 한 명 더 원한 게 아니야! 식모를 원한 거지!”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여자 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걸 자선사업으로 위장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163, 164)


야생 블랙베리를 따다가 이웃에 싸게 파는 생활력을 보이기도 하면서 이웃에서 엄마에 대한 평판이 새로워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기도 하는 엄마였다.

저자는 저자대로 불안한 가정 생활, 혹독한 사춘기, 제한된 교우 관계를 거치며 다행히 엄마가 원하는 수준의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집을 떠나 엄마를 아주 가끔씩 밖에 못 보게 된다. 그러다가 올케로부터 엄마가 이상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살고 있던 엄마에게 조현병 이 발병하였음을 알게 된다. 약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오빠네 집으로 옮겨 살기도 하는 등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음식을 거부하고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며 정체 모를 정령의 목소리를 듣는 등 엄마의 증세는 심해져 가자 저자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엄마를 방문하는 횟수를 늘리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을 한다. 

저자는 엄마의 음식 거부 증상이 음식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분유라든지아놀드 슈와제네거의 이름을 딴 아놀드 빵이라든지매우 구체적인 것임을 발견하고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엄마의 결정이 주체성의 표현이자 거대한 권력 구조에 대항하는 작은 반란 행위임을 깨달았다. (41)


저자는 엄마의 살아온 나날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에서의 전공과 관련하여 엄마의 존재와 생애를 개인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해보고자 하는 목표가 생긴다.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며 두게 된 거리, 새로 접하게 된 생각과 비판적 사고는 결국 엄마의 조현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찾는 길로 이어졌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면서 내가 품은 한은 엄마의 한과 더 끈끈히 엉켰고 감정적 응어리가 쌓이고 또 쌓이며 내가 살면서 내리는 결정에 더 많은 힘을 실었다. 우리의 한을 풀어내려 할 때마다 나는 1986년으로 되돌아 갔다. 열다섯 살에 나는 사람들이 엄마를 한 번 쓰고 쉽게 내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았고 엄마가 당신 인생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이 땅 위를 유령처럼 떠돌게끔 방치됐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236)


엄마의 한을 푸는 것이 곧 이방인처럼 살아온 나의 한을 푸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은둔생활을 하는 엄마가 집 담장 너머의 지평선을 상상하며 소리 내어 묻곤 했다.

저기 밖에는 뭐가 있을까?”

밖은 어디고 엄마가 있는 곳은 어디였을까.


1998년에 나는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 등록했고 쓸모없다고 느낄 정도로 엄마의 정신을 산산조각 낸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내겠다고 결심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다음 두 문장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모든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매춘부였어요. 그리고 쓸모없어. (325)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일 이년 만에 이루어진 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최소 두 세대의 삶에서 축적된 한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성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항상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오드리 로드가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이라는 글에서 적었듯.

나의 침묵은 나를 보호해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입니다.” (460쪽 번역가의 말)


기지촌 여성이라는 특수 신분, 그리고 가족사를 밝히는 내용인만큼 확인 작업도 많이 필요했고 가족들의 동의, 공개 허용을 묻는 과정도 특별히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나온 책이라서, 더 귀하게 읽게 된다.

한국의 아픈 역사를 읽는 마음이 역사서를 읽을 때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런 의미 있는 기록물이기를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8-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도 방금 그레이스 조가 가족에게 소송당했는지 관련 기사를 찾던 중이었어요. 마지막 문단에서 말씀해주셨듯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등의 절차가 정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hnine 2023-08-26 22:35   좋아요 1 | URL
http://geulhangari.com/archives/12147
안녕하세요. 위의 링크를 저도 여기 알라딘 친구분께서 알려주셔서 읽어보게 되었답니다. 사실 저자의 어머니로부터도 생전에 확실한 동의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저자의 말로 밖에는 확인할 수 없어서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예상되었어요.
현재 얼마나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 제기가 될 소지가 있어서, 저자의 원래 의도와 노력이 좌절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