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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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斜陽)

1. 저녁때의 햇빛. 저녁때의 저무는 해. 

2. 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몰락해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사전)


사양이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소설의 키워드 역할을 한다. 한 시대의 몰락, 집안의 몰락, 개인의 몰락, 의지의 몰락.

출판사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은 다자이 오사무는 체홉의 <벚꽃 동산>의 일본판 같은 작품을 구상하였고 제목도 <사양>이라고 정해놓았다고 한다. 그 이전에 애인이었던 오타 시즈코의 <사양 일기>를 빌려가서 읽은 바가 있고 여기에서 에피소드를 차용했다는 말도 있는데, 오타 시즈코의 <사양 일기>도 따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그 내용도 궁금하다. 출간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1년 빨랐다. 

1948년은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실격>을 간행한 해이기도 하고 39세의 짧은 생을 스스로 마친 해이기도 하다. 갑작스런 일은 아니었다. 스무살때 고등학교 기말시험 전날 밤 하숙방에서 첫번째 자살 미수를 시작으로 다음 해엔 여자와 동반 자살 시도하여 여자만 죽기도 했다. 5년 뒤 대학에서 낙제하고 신문사 시험마저 실패하자 또 자살기도. 이후엔 복막염으로 입원중 투여한 진통제 중독으로 고생하면서 건강이 악화된다. 이후에도 자살 기도를 몇번씩. 그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가 사망할 무렵은 2차 세계대전으로 자택이 파손되고 지주 제도가 해체 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 사양의 길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이즈음 그가 이 작품을 발표하자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양족'이라는 유행어가 생길만큼 이들의 공황상태를 대변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별히 작가의 개인사, 그리고 시대적 상황과 따로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작품 속 화자는 가즈코라는 여자. 몰락한 귀족 가문의 맏딸이다. 가족으로는 홀로된 어머니와 남동생이 있는데 어머니는 병을 앓고 있고 남동생 나오지는 전쟁에 참전 중이라 실질적 가장이다. 집안은 경제적으로 기울어 도쿄의 살던 집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해야했고 육체적 노동도 마다하지 않으며 생활을 꾸려나가려 안간힘쓴다. 경제적인 목적도 있지만 정신적인 허무를 메꾸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과거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전쟁에 참전했던 남동생이 돌아오는데 가즈코는 남동생 방에서 허무와 방황의 자조적인 독백으로 가득 차 있는 일기장을 발견하고 읽게 된다.



불에 타 죽는 고통. 괴로워도 괴롭다 단 한마디조차 외칠 수 없는 고래 (古來)의 미증유. 세상이 생긴 이래 전례도 없고 바닥을 알수 없는 지옥의 느낌을 속이지 마시라. 

사상? 거짓말. 주의? 거짓말. 이상? 거짓말. 질서? 거짓말. 성실? 진리? 순수? 모두 거짓말.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시시해.

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잠든 채 자연사 (自然死)!


전쟁. 일본의 전쟁은 자포자기다.

자포자기에 휩쓸려 죽는 건 싫어. 차라리, 혼자 죽고 싶어.


결국 자살하는 수밖에 도리 없지 않은가.

이렇게 괴로워한들 그저 자살로 끝날 뿐이라는 생각에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인간은, 아니 남자는 '난 훌륭해.', '내겐 멋진 구석이 있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걸까?

사람을 싫어하고, 사람들도 나를 싫어한다. (63-69쪽)


소설속 화자는 가즈코이지만 남동생 나오지의 이 일기가 작가의 생각을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보이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이렇게 때로는 가즈코에, 때로는 나오지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뒤에 등장하는 소설가 우에하라의 모습에서도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나오지 만큼이나 현실 부적응자인 소설가 우에하라에 대한 가즈코의 사랑은 작가의 내면에서 전멸시킬수 없었던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었을까? 


나는 신의 심판대에 세워진다 한들 조금도 자신을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아.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거야. 신이 벌하실 리가 없어. 난 털끝만큼도 잘못한 게 없어. 진짜 좋아하니까 대놓고 당당하게, 그 사람을 한 번 만날 때까지 이틀 밤이건 사흘 밤이건 들판에서 지새우더라도, 기필코. (128쪽)


작품 결말을 보면 더욱 그렇게 연관지어보고 싶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한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은 후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는데 망설여졌었다. 그리고 결국 읽었다.

사양을 바라보고 서는 대신 가즈코는 사양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녀가 믿는 사랑과 혁명. 우리에게 끝까지 필요한 것, 사양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랑과 혁명일지도. 그 흔하디 흔한 말이.


남성 작가가 여자를 주인공 화자로 해서 쓴 소설들이 어떤 것들이 있나 생각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점점 더 다자이 오사무의 애인이었다는 오타 시즈코의 일기 내용이 궁금해진다. 이 소설에 대한 기존의 의견들에서 벗어나 생각해본다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재조명해볼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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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양,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 나질 않네요. 기록을 안 해 놓으면 그래요. 그래서 알라딘에 꼭 글을 올려야 해요.
128쪽의 글은 확고함이 느껴지네요...^^

hnine 2023-08-17 22:44   좋아요 2 | URL
스포일러가 될까봐 작품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올리지 않느라고 내용 전달은 잘 안되었지요?
저도 책 읽고 나면 간단하게라도 꼭 리뷰를 올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버릇이 되어 그런지 리뷰를 안 올리고 나면 다음 책 읽는데도 속도가 안 붙더라고요.
이 작품에서 가즈코란 여성은 흔들리고 방황하면서도 확고한 면이 있지요. 제가 페미니즘을 언급한 이유가 거기 있기도 하고요.

2023-08-20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20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22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