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여자 불편해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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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내는 산문집은 시집보다 덜 반가울 수도, 더 반가울 수도 있다.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집 출간 소식에 덜컥 사서 읽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산문이 시 읽기보다 더 쉬우니, 시인에 대해 더 알수 있는 기회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때문이다.

'난 그 여자 불편해'라는 제목이 '최영미 스럽다' 생각했는데 정작 그런 제목이 나온 이유를 읽어보니 그렇게 의미를 붙일 제목은 아니어서 좀 실망.

그동안 신문 잡지 등 매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놓았다. 그래서 한 꼭지 글이 길지 않아 더욱 더 읽기에 시간 끌 게 없었다. 더운 날 몰입해서 휘리릭 읽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3부로 나누어, 1부는 세간에 잘 알려진 미투 논쟁에서 비롯한 어느 원로 시인 관련 소송, 재판 과정 이야기, 2부는 작가가 어쩌면 시 만큼 사랑하는 축구, 올림픽 이야기, 3부는 1, 2부와 딱히 관련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로 구성했다.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해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집단 강박, 남이 아는 건 나도 알아야 하고 시대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집착 (51쪽)


저자는 이것을 강박이고 집착이라고 했지만 나는 좀 더 소심해서 완전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용기 있게 말하는 대신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해야한다, 가능하면 남들이 하는 대로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서 내게 친구가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게 사실이고, 남이 아는 건 나도 알아야 한다며 부지런히 좇아가는 편이 못되어 시대에 뒤쳐지는 것도 사실이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날카로와보이는 인상과 달리 어디 나와 인터뷰 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털털한 면도 많고 허당인 면도 많아 의외다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 대해 쓴 대목을 읽으니 역시 그게 아니었나보다. 완벽주의 기질이 보이는 것도 같다.


한동안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않다가 1990년대 어느 날 물놀이를 다시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중등 체육 교과서를 사서 수영의 기초를 학습했다. 욕실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머리를 담갔다 빼는 동작을 되풀이하며 숨쉬기부터 다시 배웠다.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고 나는 일부러 물에 빠지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 혼자 수영장에 갔다. 물끄러미 물을 응시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과거가 되살아나 두려웠지만 '여기서 주저앉으면 영영 수영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내 키를 넘는 가장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그날의 자신감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두려움 그 자체 외에 두려움은 없다." (75, 76쪽)


이렇게 독한 면이 있었구나. 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라도 하고 마는 승부욕이 있었구나. 

그동안 문인이면서도 문단의 중심에 속하지 못하고 외면을 당해오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켜오며, 출판해줄 출판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 내 책을 출판한다는 당당함의 내면엔 이런 저력이 있었던 것이다. 


태양처럼 뜨겁지만 차갑게 식힌 문장들을 말로 내보내며 나는 떨지 않았다.


상처를 직시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그녀들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말해야 자유로워진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7쪽,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정한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환상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은 나를 속였지만 게임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 (77쪽, '게임은 속이지 않는다.')



어느 덧 60대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당당함과 서슬이 살아있는 작가에게 나는 여전히 관심을 잃지 않고 안테나를 향하고 있다. 아직도 내 손 가까운 곳에 그녀의 시집들을 두고 수시로 꺼내 보며 그녀 특유의 생기와 생동감을 느껴보고 있는 즐거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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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고은시인과의 일에서 최영미시인을 다시 봤구요. 대단하고 훌륭한 용기였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스스로 불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용기 사실 참 쉽지 않잖아요. 이 책도 관심가는 책으로 넣어놨었는데 어느새 또 잊고 있었네요. 덕분에 다시 생각나서 이책을 읽게 될 거 같습니다.

hnine 2023-08-17 05:09   좋아요 1 | URL
저는 최영미 시인이 쓴 시의 팬이고 최영미 시인에 대한 팬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끊임없이 책을 사고 읽는 시간들이 쌓여, 당당하게 나의 삶을 꾸려나갈수 있는 용기로 이어질 수 있으면
하는 희망 사항입니다.
요즘 같이 더운 날 이 책으로 하루쯤 더위 휙 날려버릴수 있어요. 다 읽을 때까지 다른데 정신 팔지 않게 붙잡아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