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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제목의 적과 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스탕달 자신은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여러 의견들이 분분한 가운데 적, 즉 붉은 색은 복장 색깔로서 군인계급을, 흑은 성직, 사제직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의견이다. 스탕달이 이 작품을 쓸 당시 프랑스는 평민이 신분을 상승시켜 출세할 수 있는 두개의 주요 루트가 군인 계급과 성직이었다.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태어난 스탕달의 본명은 앙리 벨. 스탕달은 그의 필명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둡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파리로 갔다가 우여 곡절 끝에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군대의 소위로 임관받고 이탈리아 원정에 참관한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그의 지위도 소용없게 되었으나 이탈리아를 좋아했던 스탕달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체류하며 크고 작은 관료직에 종사하며 경제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으나 풍족하지는 못했다. 몇 명의 여성들과 연애 사건도 겪지만 실연과 정치적 이유로 밀라노를 떠나게 되고 프랑스로 돌아와 작품들을 출판한다. 적과 흑은 1830년 그의 나이 47세때 파리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프랑스 베리에르라는 소도시에서 목수일을 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 쥘리엥 소렐.
변변치 않은 신분, 가족들과 원만치 않은 관계 등으로 쥘리엥은 구차한 상황을 탈피하여 출세해볼 목적으로 베리에르 시의 시장인 드 레날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쥘리엥이 자기보다 어린 나이에도 박식해보이지만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인 것을 알게 되고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드 레날 시장 부인의 마음을 알게 된 쥘리엥은 곧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다른 가족들 몰래 만남을 갖는다. 매력적인 청년 쥘리엥에게 마음이 있던 이집 하녀 엘리자는 쥘리엥에게 프로포즈를 하지만 드 레날 부인과 좋아하는 쥘리엥은 하녀 엘리자의 청을 거절한다. 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엘리자는 드 레날 부인과 쥘리엥과의 사이를 주위에 폭로하고 쥘리엥은 그 집에서 쫓겨나 브장송이라는 곳의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다행히 쥘리엥은 신학교에서 실력을 인정 받지만 수입을 좀 더 챙겨볼 요량으로 파리의 대귀족인 드 라 몰 후작의 비서로 일해주기로 하는데, 여기서 그는 또 드 라 몰 후작의 딸 마틸드와 눈이 맞는다. 드 레날 부인과 달리 거만하고 일상이 권태롭기만 했던 마틸드의 눈에 쥘리엥은 어딘가 달라보여 마음을 끌게 한다. 쥘리엥은 서슴없이 접근해오는 마틸드와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며 비밀스런 연애를 벌이다가 마틸드를 임신시키게 되고, 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후작은 어쩔 수 없이 둘의 결혼을 허락하는데, 여기서 쥘리엥의 과거는 또 그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데.
계급과 신분의 굴레가 팽배했던 사회에서, 출세가 인생의 목적이었던, 야심찼지만 동시에 심약하기도 했던 청년 쥘리엥과, 부르조아 신분의 여유가 넘쳐 권태 속 일상을 보내고 있던 마틸드는 그 당시 프랑스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이 배경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1827년의 일명 '베르테 사건'이다. 법정 신문에 상세하게 게재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베르테라는 청년이 가정 교사로 들어간 집의 부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의심받게 되자 억울하다고 생각한 베르테는 앙심을 품어 살해를 시도하여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아 처형된 사건이다. 이런 것을 보면 스탕달의 이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단지 그가 지어낸 한 청년의 연애 사건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애 소설이라고 보기엔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 상류 계급 여자와 하류 계급 출신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애증과 복수가 얽혀 비극으로 마치는 얘기가 참신하다고 볼수는 없으니까. 작품 속 쥘리엥이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입장을 나타내듯이 스탕달 자신이 실제로 나폴레옹 군대에 지원했던 경험이 있고, 수년간 이탈리아와 파리를 오가며 사회에 팽배해있는 신분과 계급의 격차, 출세의 장벽 등을 실감하며 고발하고 싶은 것들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그 나름의 폭로를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출세를 지향하는 쥘리엥의 처지 뿐 아니라 쥘리엥을 사랑했던 여자들이 속한 두 가문을 통해서, 사랑에 임하는 그 여자들의 심리 묘사를 통해서, 귀족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그 알맹이는 없고 허세와 권태만 있는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순서를 다 기억못할 정도로 혁명에 혁명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프랑스 혁명 시대, 극과 극의 체제 변화를 겪으며 불안한 가운데 개인의 성공과 안위를 모색해야했던 시대상이 잘 찾아보면 보이는 것도 같다.
스탕달 하면 이 '적과 흑', 그리고 '파르마의 수도원'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마침 집에 있으니 다음 번 읽을 책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 Rothko, Right red over bla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