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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을 줍다 ㅣ 창비시선 240
유안진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대학생 때,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와 함께 유행가처럼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던 한 편의 글이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였다. 나 역시 숱하게 그 글을 맘에 드는 친구들에게 정성껏 적어 보냈었다. 베껴 적고 있는 동안의 기쁨이 더 컸고 그 글을 적어 보낼 대상이 자꾸만 더 생겨나기를 바랬었다.
이후로 유안진 시인의 수필, 시집은 거의 다 구해 읽었고, 시집의 대부분은 지금도 책꽂이에 간직하고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같은 과 친구 중의 한명은 말하기를, "무슨 글이 이렇게 다 사는게 힘들다는 불평뿐이니.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마도 힘이 들때 내 기분과 비슷한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기분과 반대의 글을 읽으며 더 기운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보다.
이 시집은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아마 제일 최근에 펴낸 시집이 아닌가 한다. 시집 뒤에 실려 있는 해설에도 나와있듯이 유안진은 자의식이 무척 강한 시인이다. 내 안의 내가 크게 자리하고 있어, 그것이 삶의 짐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는.
수십년 전 부터 시만 쓰고 살고 싶다던 이 시인은 몇 해전에 드디어 정년을 맞기 전 스스로 교수직에서 사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
........(중략)..................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비 가는 소리' 중 일부 발췌)
다른 시집에 실린 그녀의 시 <사리>에서, 사는 동안의 고뇌와 진심이 모이고 굳혀져 드디어 몸에 사리가 생겨났다고 노래했던 그녀. 내게 있어 유안진의 시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굽히지 않고 지켜가는 그 자의식, 고집스러움이 달라질 전조인가. 비 '오는' 소리가 아닌 비 '가는' 소리를 노래한 것을 보면. 아니 아니, 섣부른 추측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