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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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유명한 <동물 농장>과 <1984년> 이전에 <카탈로니아 찬가> 가 있었다.

시간순서로도 그렇지만, 작가의 스페인내전 참전기록 <카탈로니아 찬가> 없이 <동물농장>과 <1984년> 같은 소설이 나왔을까 싶어서이다. 

카탈로니아는 스페인 북동부지방 이름으로서 항구도시 바르셀로나가 위치해있는 곳이다.

전체주의, 파시즘을 혐오하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 (1935-1939) 취재를 위해 종군기자로 갔다가 카탈로니아에서 직접 의용군에 지원해버린다. 이 책의 첫문장은 그 입대 전날 기록에서 시작한다.

의용군에 입대하기 전날이었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레닌 병영에서 장교 탁자 앞에 서 있는 한 이탈리아인 의용병과 마주쳤다. (9쪽)

여기서 ''는 조지 오웰 작가 자신이다. 자기처럼 의용군에 지원한 한 이탈리아 출신 의용군을 보며 호감을 느끼면서 그의 행색과 표정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읽고 있다.

이 이탈리아인 의용병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남루한 군복과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워 보이는 얼굴은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는 그 전쟁과 관련한 내 모든 기억과 얽혀 있다. 바르셀로나의 적기, 초라해 보이느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 전선으로 기어가던 가늘고 긴 기차, 전선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전쟁에 찌든 잿빛 소도시, 질퍽질퍽하면서도 얼음속처럼 추운 산속 참호.

1936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부터 불과 일곱 달 전이다. (11쪽)


파시스트에 맞서는 공화파 통일노동당 소속으로 1936년 12월에 의용군에 지원하여 1937년 1월부터 5월까지 스페인 아라곤 전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기록이니, 소설이라기 보다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자기 의견이나 생각이 많이 들어가있기는 하지만 허구의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실제 사건, 실제 인물, 실제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떤 이념과 기대를 가지고 내 조국도 아닌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현장에서 그 이념과 기대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었는지, 몸으로 겪어 얻은 결론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의용군에 입대는 하였으나 기대하던 전투에 투입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고 무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태로 전선에서 대기 상태로 몇 주를 보내며 그는 점차 이 내전의 실상과 목적을 파악해가는데, 전쟁은 그가 목적으로 하던 혁명, 즉 노동자를 위한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었으며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작가에게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혁명이 더 중요했고 그 혁명을 이루기 위해 거칠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보다는 전쟁의 승리가 더 중요한 공산주의, 리더 없이 나가야하는 무정부주의의 한계 등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이 책 5장에 보면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나타나있다. 


6, 7장엔 파시스트들과의 참호전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와중에도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는 군데군데 살아있다.

그 포탄들은 너무나 천천히 날아 달리기를 해도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휘파람을 부는 소리 같았다. (114쪽)


8장, 즉 이 책의 중반부 쯤 오면 작가가 파악해가고 있는 공산주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스페인내전에 처음 투입되었을때 작가가 본 스페인의 모습, 즉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 같은 스페인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완전한 평등이었다. 실제적인 면에서도 완전한 평등에 가까웠다. 사회주의를 미리 맛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예컨대 속물 근성이라든가, 돈을 악착같이 벌어 모으려는 태도, 상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 그곳에는 농민과 우리만 있었다. 누구도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만큼은 지속되었다. (...) 냉담과 냉소보다는 희망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 그 결과 사회주의의 수립을 갈구하는 내 용망은 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 되었다. (140, 141쪽)

그가 애초에 지향하던 사회주의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드러내주는 부분이라서 인용해봤다. '이론적으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으로 봐서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하였음을.

작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아주 다른 길로 구별되어 갔으며 스페인은 점차 프랑코의 독재 영향권으로 들어가 공산주의의 주도 아래 들어가는 것을 목격해갔다. 전쟁은 사회주의 국가 실현을 위한 혁명을 위한 길로서가 아니라, 공산주의 정권의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전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아가면서 작가는 큰 실망과 패배감을 느낀다.

그해 4월말, 보름의 휴가를 얻어 들른 바르셀로나는 노동 계급의 지배가 아닌 다시 부르조아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그가 의용군 입대차 머물렀던 1936년 12월과 이미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휴가차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되는 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르셀로나 시가전이다. 정부의 치안대 (공산주의자)가 전국노동자연맹 (무정부주의자) 거점인 전화교환국을 점거하여 노동자연맹을 쫓아낸 것을 계기로 치안대와 통일사회당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대 전국노동자연맹과 무정부주의연합 (통일노동자당)이 맞섬으로써 이들 사이의 분열이 공고화 된 것이다. 조지 오웰은 통일노동자당 소속이었고, 애초에 통일사회당과 통일노동자당은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었으나 이제 통일사회당은 통일노동자당을 일컬어 '위장한 파시스트 조직'이라며 바르셀로나 시가전과 그에 이어진 바르셀로나 전투에 대한 누명을 씌우기 시작했다.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쓰기로 시작한 동기 중의 하나가 자기가 본 것을 바탕으로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이런 누명을 벗겨내고자 한 것이라고 볼수 있고 이 책의 11장에서 본격적으로 이것을 증명해보이는 기술을 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가전은 통일노동자당의 단독공작을 통해 일어난 폭동이었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었고, 스페인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을 커져갔으며 통일노동자당과 전국노동자연맹의 간부들도 차츰 몸을 사리게 되고 전쟁에 대한 외국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의 지원과 조력이 끊어질까봐 눈치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져갔다. 

더불어, 바르셀로나 전투에서 작가가 목격한 것은 통일사회당, 공산주의, 통일노동자당 사이의 분열이라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정작 민간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때를 돌이켜볼때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시에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 갑자기 내 시야에 흘끗 들어온 민간인의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의미 없는 소동으로 비칠 뿐이었다. (191쪽)

독재와 전체주의에 맞서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평등 사회를 이루자는 이념아래 전투가 벌어지지만 정작 그 민중들에게 그런 전투는 의미없는 또하나의 노동으로 비춰질 뿐이라는 것. 

얼마전에 읽은 치누아 아체베의 <사바나의 개미언덕>의 한 대목도 그러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한 대학에서 열린 연설회에 정작 노동자들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시가전 후 다시 전선으로 돌아온 작가는 전쟁이 끝난 뒤 스페인의 운명을 예측하고 있었다. 즉, 스페인에는 공산주의자들 영향이 더욱 강력한 우익정부가 들어설 것이고, 그 정부는 결국 파시스트적 경향을 가질 수 밖에 없을거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투에 참가한 작가는 목에 총상을 입고 타라고나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받고서 탈출하듯이 서둘러 영국으로 돌아온다. 스페인내전의 결말, 자기 이념의 결말을 보고서 내린 결단인 셈이고 스페인내전에 의용군으로 참전한지 여섯달 후의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 이 글을 쓰게 된다. 자기가 참전하여 목격한 사실을 토대로 스페인내전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과 통일노동자당의 누명을 벗기고자 하는 개인적인 노력의 일환, 이것이 이 책 <카탈로니아 찬가>의 탄생 배경이라면 배경이다. 문학적 목적으로 쓰였다고 보기엔 그 목적이 처음부터 뚜렷하다. 차라리 정치적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의 예견대로 스페인 내전은 군부 반란군 (프랑코 군부)이 승리를 거두었고, 스페인 공화국은 사라지고 프랑코의 파시즘 국가가 탄생하였다.


경험은 인식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은 인식과 추론을 바탕으로 한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페인내전의 경험은 이 책 한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은 터닝포인트를 겪었고 세계를 보는 눈도 달라졌을 것이다. 동물농장과 1984가 이 책보다 나중에 쓰여졌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책 제목이 카탈로니아에 대한 오마쥬 (Homage to Catalonia) 인 것도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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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1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하여튼 저하고 맞지 않는 작가입니다. 꼭 집어서 한 명 더 고르라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사실 이런 얘긴 하지 말아야 건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데, 글쎄 지금 취중이란 말입니다. 하하하...!

hnine 2021-01-17 04:31   좋아요 0 | URL
솔제니친 책은 저도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한권 읽었는데 먼저 읽은 동생이 말하기를 이 책 한권이 딱 하루 얘기라고 하면서 읽어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때 얘기라 벌써 오래전 일이어요. 지금 읽어도 재밌게 읽진 않았을텐데 중학생때이니 어땠을까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시는데 맞지 않는 작가도 있으시겠지요. 저도 그런 작가가 있나...생각해보니,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맞지 않는 작가 나올때까지 더 많이 읽어야겠어요 ㅋㅋ (이 무슨 엉뚱한 결론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