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 세 단어 따로 봐도 우울하기만 한데 심지어 세 단어가 모였다.「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저자는 63세. 처음부터 임시직은 아니었다. 38년간 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했고 2016년 60세 나이에 퇴직했다. 그에게는 출가한 딸과 대학3학년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의 진로로 인해 저자의 퇴직후 노후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아들이 대학 졸업후 취업 대신 전문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대학 졸업후 적어도 3년 더 고액의 학비를 조달해야 되는데 퇴직하기 얼마전 딸의 결혼 비용으로 저축해놓은 돈의 상당한 부분을 이미 소비하였고, 퇴직금은 오래 전에 중간 정산을 통해 미리 받아 집 마련하는데 써서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이다. 더구나 신용대출 받은 것도 남아있어 은행으로부터 빚독촉까지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임시직이든 뭐든 일을 더 해서 수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60세 (60세 다음에 노인이라고 굳이 붙이고 싶지 않다. 예전의 60세와는 다른데다가 60세에 노인 소리 듣고 싶어하는 60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의 퇴직자가 일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저자는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 구직을 하진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예전의 자기 지위를 염두에 두고 일자리를 찾는다면 더욱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임시 계약직 노인장으로서 겨우 찾은 일자리는 다른 말로 '고·다·자'라고 불리는 일인데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 전적으로 고용주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찾은 첫번째 일자리는 버스터미널, 고속버스 배차원이었다. 하지만 하는 일은 말처럼 한가지 업무가 아니었다. 펀하게 밥 먹을 사이도 보장 못하는 일정을 따라 바삐 일하다가 화물 운반용 손수레에 몸이 걸려 곤두박질 치는 바람에 부상을 입고 병가를 내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해고 당하고 만다. 다음 일터는 아파트 경비원. 나의 사촌 오빠도 아들 둘 다 키워 결혼까지 시켜 독립시키고도 지금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고, 평소에 아파트 단지 청소, 화단 정리,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단속 등의 일로 늘 바쁘신 경비원 아저씨들을 보며 경비원 업무로 도대체 몇가지를 시키는 것인가 의문을 가지고 있던 터이므로 더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이다.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형편없었다. '늙은 소의 하루'라고 저자가 이름 붙인 경비원의 일과표는 두 페이지에 걸쳐 빼곡했다. 실제로 하는 일은 그 이상이라니, 그야말로 아플 사이도 없이 정신 놓고 몸을 움직여야 겨우 하루치 일과를 마치는 일정이었다. 저자는 결국 여기서 또한번의 부상을 당하게 되고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으나 허락하지 않는 관리사무소의 처우에 주사와 약물 치료로 버티던 중 정작 해고는 다른 이유로 당하게 된다. 아파트 자치회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다음으로 찾은 일자리는 버스터미널이었는데 처음 일자리와 달리 말은 보안요원이었으나 버스의 하차, 주차, 경비에 이르기 까지 살인적인 일과였고 결국 또 버티다 못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해고당한다. 7개월동안 투병생활을 거쳐 지금은 네번째 임계장으로서 주상복합건물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네번째가 n번째로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최저 임금 인상, 경비업법 위반 처벌 방침 등의 변화가 있는 듯 보이지만 헛점을 더 많이 안고 있는 변화일 뿐이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고 임시직, 비정규직의 설자리만 더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가 반대를 한다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좀 더 부담을 하더라도 개선의 필요성이 분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을 대우하지 않고 이렇게 막 부리면 그 결과는 결국 어디로 갈지 모르는바 아닐텐데, 인권이고 뭐고 입으로만 인권일뿐 눈 앞의 이익 추구가 최우선이다.

이분이 이렇게까지 부상 당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받는 처우를 감내하며 일을 계속 해야했던 이유중엔 자녀의 진학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대학까지 졸업시킨 후에도 이렇게 무리를 해가며까지 자식의 진로를 위해 부모는 희생해야 하는지, 그것도 갑갑했다.

한 가지 문제 뒤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래서 더 문제 해결을 복잡해보이게 한다고 생각하니 도움이 안된다. 최소한 눈을 들어 내 주위를 좀 둘러볼 수 있어야겠다. 내 문제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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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22 1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일 큰 문제는 임계장 당사자에게 있지 않을까요.
아들이 대학 졸업하면 요샌 스물여섯. 대학원 학비를 왜 부모가 내주어야 하는지 이해가 좀 덜 갑니다. 넉넉한 가정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자신이 나가서 험한 일을 하면서, 산재를 당해가며 나이 든 아들의 학비를 내준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거나 안 했거나, 난 모르겠으니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살라고 집에서 아이들을 쫓아낸 제 입장에서, 딸 결혼할 때 부모 자산 헐어 과감하게 보태준 것부터 이해가 좀 덜 가네요.
아이들 쫓아내니까 생활의 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게 이젠 집에서 아내 찾는 것도 휴대폰 써야 할만큼 널럴하니(여기 휴지 없네. 좀 가져다줄래?), 무척 좋기만 하네요. 아이 장가들 때, 전 현금 3천, 저와 처의 결혼반지, 이렇게만 딱 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답니다. 나이 든 사람들도 바뀌어야 해요.
제 생각엔, 임계장 스스로가 불행해지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hnine 2020-10-22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식이 어른이 되는 시점은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는 때 라고 하지요.
언제까지나 양육하고 관여하려고 하는, 그걸 딱 끊어야 부모도 자식도 모두 자기 갈 길을 제대로 가는 것인데, 부모 입장에선 그게 어려운가봅니다.
자식 입장에서도 부모가 저렇게까지 해가며 자신의 학비를 조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 그간 사정을 가족들에게 자세히 알리지 않았었는지 저자가 이 책의 후기에도 썼더라고요. 책의 내용을 알고서 가족들이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요.
그나저나 Falstaff님 자녀분들 모두 독립시키셨군요. 어려운 일 마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