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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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 붙였든 출판사에서 붙였든 작품의 제목은 의미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친애하는' 이란 말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친밀도를 가진 경우에 쓰지 않나 싶다. 핏줄로 맺어진 관계, 즉 가족, 부부, 자식에게는 잘 안쓰는 걸 봐서도 그렇다. 이 책에서 주인공 나의 입장에서 친애하는 대상은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이다. 대상이 두 사람이기에 친애하고 친애하는 이라고 두번 연달아 썼다고 한다. 주인공 인아와 인아의 엄마, 인아의 외할머니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기가 인아가 화자가 되어 펼쳐진다. 인아가 아직 아기일때 엄마는 어린 인아를 남겨두고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느라고 인아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아빠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텐데 엄마가 아기를 남겨두고 혼자 유학을 간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상황이랄 수 있었다. 몇년 째 불화가 지속되는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인아가 대학생이 된 후까지 이어지고, 외할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옆에서 보살펴드리기 위해 인아가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지내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말에 인아는 외할머니와의 각별한 정도 정이지만 엄마와 한집에서 안있어도 된다는 것때문에 기꺼이 짐을 싼다. 할머니의 삶을 보면, 부유한 집의 딸로 태어났지만 집에서 정해주는 집으로 시집을 가야했던 시절을 살았고,  교사였던 남편이 강화도 학교로 발령받아 홀로 가버리자 혼자 시댁에 남아 시부모를 모시며 아이를 키워야했다. 큰 맘 먹고 아이를 들쳐업고 찾아간 강화도의 남편 학교에서 할머니는 남편이 다른 여교사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학자 기질이 있고,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했던 할아버지였지만 그런 할아버니에게 할머니는 밥하고 시중드는 것, 아이를 잘 키우는 것 말고는 해줄게 없었다. 그런 할머니를 옆에서 보고 자란 엄마는 많은 딸들이 그렇듯 할머니의 삶을 한심해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며 자랐으며, 지금 엄마와 딸인 인아 사이에 거리감이 있듯이, 한번도 떨어져 살아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할머니 사이엔 거리감과 벽이 존재한다.

할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상황이 예기치 않게 잠시나마 이 삼대가 한집에모여 지내는 시간대를 형성하고 인아는 자신과 엄마와 할머니의 삶, 그리고 이들 서로의 관계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160쪽 정도의 중편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도 어느 정도 들어가있는 것 같고, 외국의 다른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도 많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전통적인 관습의 영향속에서 감히 거스르지 못하고 살아왔으나 자기의 딸은 그렇게 살지 않기 바라는 할머니, 내 가정이 소중한 것 처럼 나의 삶과 나의 목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 엄마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지만 내가 받고 싶은 것은 엄마의 부담스런 기대보다 엄마로부터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애정이었던 .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름의 빌라>에 실려있는 단편 <폭설>에서도 나온다. 작가는 현대문학 PIN 시리즈 단행본 청탁 마감을 앞두고 무엇을 써야하나 고민 끝에 평소에도 관심있던 주제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바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 딸과 엄마의 이야기는 모두가 같으면서 모두가 다르다.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면서 다 다르다는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자기의 삶에까지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것 같아 잊고 살고 싶다. 늘 자식인 자기보다 엄마 자신의 일을 쫓아 살아온 것 같은 엄마를 향한 인아의 마음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기준으로 보면 엄마 기대만큼 성공적인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주눅든 삶을 살고 있는 인아에게 엄마는 한번도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던지는 엄마이다. 그런 엄마를 자식인 내가 이해하라는 내면의 소리를 인아는 들어야하는가? 결국 다 자기 몫이란 말인가?

 

화해와 용서는 말로도 쉽게 할게 아니지만 실제로 행하는건 더욱 어렵다. 마음만 너그러워서 용서와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백수린의 이 작품을 읽으며 배운다. 할머니, 엄마, 딸, 이중 누구도 악인은 없다. 악인이 될 가능성 조차 낮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용서가 되려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한가지를 없애야 하는데 그것은 상대에 대한 기대였다. 나에게 어떤 엄마였으면, 내 딸은 최소한 어떤 딸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관계의 벽, 원망의 벽은 더이상 단단해지지 않고 조금씩 허물어질 준비를 시작한다. 문제는, 기대를 내려놓는다는게 남남 사이가 아닌 이상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게 어디 엄마이고 딸이라고 할 수 있냐는 딜렘마.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역시 백수린 다웠다. 그러나, 3대에 걸친 역사를 통해 뭔가 뚜렷하고 일관적인 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면, 그럴땐 오히려 좀더 강한 필치와 서사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 <폴링 인 폴>이 이미 책상 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단편집인데 제목 폴링 인 폴은 아마도 영어 Falling in Paul을 소리나는대로 쓴 것일테고 여기서 Paul 은 사람이름이겠지? 배경으로 외국이 자주 등장하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것도 그럴까. 상상해보며 책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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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3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표를 세 개만 주셨네요.
저는 어제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참 좋았어요. 그 소설집에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란 소설도 담겨 있는데 오늘 이걸 들어봐야겠네요.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에요. 좋은 소설이 많으면 종이책으로도 사려고요. 꼭 오디오북으로 들어 좋은 건 종이책을 사게 돼서 지출이 많아지는 게 문제예요. ㅋ

추석 연휴를 달콤한 휴식과 함께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hnine 2020-10-01 00:45   좋아요 1 | URL
요즘 제가 별점 주는데 좀 인색합니다. ^^
박상영 작가 책도 한번 읽어보려고 찜해두고 있는지 꽤 되었는데 아직 못읽어보고 있어요. 작품 활동도 활발하고 대중매체에 출연도 자주 하더라고요.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은 제가 얼마전에 읽은 <여름의 빌라>에 수록되어 있어 읽어보았지요.
이번 추석엔 집에서 차례만 지내고 산소엔 나중에 가기로 했답니다. 산소에 안가는것만해도 마음의 부담이 훨씬 덜하네요. 준비하는 것도 덜 분주하고, 또 이번엔 제가 남편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어요.
pek님도 추석 잘 보내시고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