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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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직장인들에게 저자와 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 생활 중 1년을 휴가로 얻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한달도 아닌 1년을 그녀 말대로 '삶의 쉼표' 찍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JTBC 방송국 기자인 저자가 2018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서른 아홉살에서 마흔 살 절반까지 1년을 통째로 영국 런던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쓴 글 모음이다. 영국의 다른 도시와 다른 몇 나라를 방문하긴 했으나 본거지는 런던의 카나리워프의 아파트. 여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것을 모으러 떠난 1년을 보냈다. 얼마나 좋았을까.

평소 기자라는 직업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찌들어 살 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기자라는 직업과 일을 사랑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업에서 온전히 벗어나 누리는 시간은 금쪽 같았다. 평소에 좋아해오던 미술에 대한 흠모를 런던의 그 많은 미술관을 다니는 것으로도 성이 안차 아트 아카데미의 미술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미술에 대한 수업을 듣고 그림 수업을 받았다. 런던의 집값이 비싸지만 안전을 위해 런던 2존의 비교적 괜찮은 아파트를 선택하여 마음껏 음식을 해먹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살아야하는 불편을 피해갈 수 있었다. 소위 포시 잉글리시라는 억양을 배워보기 위한 시도로 발음 교정 강의 (Accent Softening) 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여 개인 지도를 받는 기회도 만들어 탄탄한 건강 유지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도 하였다. 소더비 경매가 있던 날은 기자라고 밝히고 300~400억 예상 낙찰가인 그림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의 프레스석에 앉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누렸다. 읽으면서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

내가 지금까지 읽은 런던 여행기만 해도 적지 않은데 굳이 이 책을 또 구입하여 읽게 된데는, 당분간 여행을 꿈꾸기 어렵다는 현재 상황이 부추킨 것도 있고, 저자가 런던에 있던 그 1년 속에 나 역시 혼자 런던을 다녀온 시기 (2018년) 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열흘에 불과했지만 시기적으로 그녀의 글에 더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점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도 썼다시피 읽다보니 부러움이 조금씩 차올랐다. 2018년이 아니라 그보다 수십년 전 내가 혼자 영국에 더 오래 머물렀을 때의 생활과 너무나 대조적인 생활을 하다가 온 저자가 부러웠던 것이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곧 정신을 차렸다. 각자의 경험은 모두 그 나름대로 소중한 것이니까.

1년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그녀는 아주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시간을 채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혼자 하는 일의 서투름에 대해 털어놓는 솔직함도 보였다. 길 못 찾는 길치에, 기자이면서도 소셜 미디어에 대한 기피증, 영국식 영어의 낯섬, 그림을 좋아하고 좋아한 세월이 오래이지만 전문적인 단계는 전혀 아니라는 고백도 털어놓는다.

 

좋아하는 것과 직업은 일치해야하는가?

역설적이게도 내 전공이나 일이 그림과는 전혀 무관했기 때문에 마냥 그림을 좋아한 것이다. 그림 에세이를 읽고 화집을 보고 전시회를 가는 것은 모두 내가 힘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이었다. 잘 몰라도 되고, 잘하지 못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영역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순수한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98쪽)

 

루틴의 중요성

살면서 좋은 루틴을 많이 만드는 건 좋은 취향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좋은 루틴과 좋은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때 인생도 차츰차츰 더 좋아진다고 믿는다. 런던에서 새로 얻었던 일상의 루틴들은 참 좋았고 소중했다. 갈망하고 동경하는 데 그쳤던 좋은 것들을 모아 내 취향도 한층 견고해졌다. 덕분에 앞으로 더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겼다. (190쪽)

 

그녀의 의견이지만 나도 공감한다. 나 역시 미술과 전공은 전혀 무관하지만, 그리고 미술에 대해서는 부족한 상식이지만 마음을 쉬게 하는 힘이 그림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이 그냥 그림이 아니라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있음을 알게 되고 나서 더 좋아졌다. 잠 안오는 밤 조그만 화집을 이불속까지 가지고 들어가 펼쳐보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루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루틴이라 하면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습관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런던으로 떠날 때부터 책을 쓰기로 계획을 했었던 것 같다. 그녀가 그림을 좋아했고 제목도 암시하고 있기에 그림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 차지할거라 기대했거나, 그녀가 기자라는 점을 생각해서 혹시 정치, 경제, 시사, 사회 문제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썼을거라 짐작했다면 오해. 오히려 런던에 머무는 동안의 소소한 일기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무리없이 줄줄 읽힌다는 장점이 있으나, 좀더 특별한 내용을 기대했다면 아쉬울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행을 할때마다 여기에 다시 오게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그녀가 가본 여행지를 내가 다 가보진 않았지만 최소한 런던은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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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8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쯤 일을 쉬고 어딘가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보는 것. 모든 사람의 로망이겠지요. 그래서 제 꿈은 연금받는 퇴직자입니다. ㅎㅎ

hnine 2020-06-29 05:03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연금받는 퇴직자 ^^
그런데 주위에서 보면 막상 연금받는 퇴직자가 되니까 그동안 하고 싶던 일을 하며 보내기 보다 늘어난 시간을 주체하기 부담스러워하며 심심하게 보내는 경우도 의외로 많더라고요.
이 책의 저자는 한창 나이때 일년 휴가를 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 남편, 직장, 모두 두고 혼자 떠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