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EBS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선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집짓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새집 쯤이야 우습게 볼지도 모르지만 사람인 나도 직접 안지어본 집이다.

조그만 새가, 자기가 살 목적이 아니라 알을 낳아 품을 집을 짓는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나뭇가지 재료도 직접 구해오고 부리로 잇고 거미줄로 이어붙혀 일주일 만에 튼튼하고 촘촘한 집을 완성하였다.

"저 새가 바로 아키텍트 (architect) 네!" 라고,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으로 말하자면 자기 집을 아직 지어본 적 없는 건축전공자이다.

집을 완성하자 이 아키텍트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곧 집 안에 꼼짝하고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알을 낳는 것이다. 푸르스름한 색이 도는 알. 그리고 그 알을 품는다. 2주 동안 그렇게 품고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바로 뻐꾸기라는 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그 둥지에 들어가 자기 알을 낳아놓는 것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 알도 함께 품는다. 결국 먼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가 아니라 뻐꾸기 새끼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어미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에 이 뻐꾸기 새끼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막 알을 깨고 나온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도 밀어낸다. 이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는 뻐꾸기 새끼 독차지.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새가 물어온 먹이를 먹으며 뻐꾸기 새끼가 자라난다.

둥지밖으로 떨어진 붉은머리오목눈이 알. 그리고 알에서 나오자마자 눈도 뜨지 못하고 둥지밖으로 떨어진 새끼.

태어나자마자 태어난 세상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바로 세상을 떠나야하는 이들의 운명은 대체 뭐지?

태어나자마자 주인을 밀어내고 생존하는 방법을 뻐꾸기 새끼는 대체 언제, 어디서 배웠지?

그건 학습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해설자가 말한다.

 

운명, 본능, 생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생명은 아름다운가? 생명의 본질은 아름답다고 할지몰라도 그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과정은 처절하고 전투적이다. 그냥 사는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집에 있는 새도감을 찾아보았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 보느라 사놓은 도감이라서 먼지가 하얗게 쌓여있었다.

 

 

 

 

 

 

 

 

 

 

 

 

 

 

 

 

 

 

 

 

 

 

 

 

 

 

 

 

 

 

 

 

 

 

 

 

 

 

 

 

 

 

뻐꾸기는 어쩌다가 그런 방식으로 새끼를 낳고 번식시키게 되었을까.

뻐꾸기는 뻐꾸기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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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05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뻐꾸기 알 얘기 듣고 놀란 적이 있어요. 이기적인 생존법인 듯. ㅋ
동물의 세계는 잔인함이란 무기를 갖고 사는 것 같아요. 티브이에서 먹잇감을 공격하는 동물을 보면 끔찍하더라고요.
동물의 눈으로 본 인간의 세계는 어떠할지 궁금하네요.

hnine 2020-03-05 13:05   좋아요 3 | URL
다른 생명체를 이용해서 생존에 사용하는 것이라면 인간을 따를 수 있을까요?
생명계의 어쩔 수 없는 섭리라지만 인간은 때로 너무 이기적이다 싶을 때가 많아요. 뻐꾸기보고 뭐라 할 일이 아니겠지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책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감정이 들어요.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팩트로 받아들여야 할텐데도 말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