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에서 길을 찾다 - 부부가 함께한 유럽 문화 기행
권순긍 지음, 최선옥 그림.사진 / 청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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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기는 읽어도 읽어도 여전히 흥미가 생기는 것일까. 같은 나라를 다녀온 여행기라 할지라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언제, 어떻게, 왜 갔느냐에 따라 내용은 다 다르고 읽는 재미도 다르다. 그들이 방문했다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아마도 책마다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읽게 되니 재미가 더한 것 같다.

이 책은 일종의 부부여행기이다. 대학교수인 남편이 안식년 휴가를 맞아 헝가리의 한 대학교에 머물게 되었고 고등학교 미술교사인 아내가 동행하여 함께 지내는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남편이 주로 글을 썼고 아내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책이 두툼하다. 헝가리에 체류기간이 넉넉하다보니 단기 여행과 다르게 유럽의 어떤 도시는 두번 이상 방문한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은 더 눈여겨 읽게 된다.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경우란 웬만큼 좋은 곳이 아니라면 없을테니까.

이 책에 실린 장소는 아테네, 두브로브니크,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파리, 아를, 세비야, 똘레도, 그라나다, 빈, 잘츠부르크, 부다페스트 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기로 결정하면 우리는 출발 전 준비로서 흔히 그곳의 날씨는 어떤가, 어디서 묵을까, 어떤 유명한 장소를 가볼까, 어디가 맛있는 곳인가, 교통편은 어떤가 등을 여행가이드 책이나 인터넷 자료를 통해 알아본다. 이것 외에도 필요한 준비 사항은 역사, 언어, 종교, 정치, 지리, 문화, 예술 등 그 나라와 그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어떤 곳을 방문하기 전, 그곳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공부를 제대로 하고 갔다는 것이 드러난다. 수박 겉핥기 식의 얕은 정보가 아니라 여행 방식, 나아가서는 성격, 성향까지 짐작케 하는 진지하고 폭넓은 조사를 곁들였다.

예를 들면, 파리 여행기를 다음과 같이 파리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파리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근대의 상징적인 도시라는 것이다. 로마는 분명 고대와 중세의 중심이었고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근대 문화의 중심이자 그것을 확대 재생산한 곳이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 19세기의 수도>,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파리, 근대성의 수도>라는 책을 써서 파리를 근대성, 즉 '모더니티'의 상징적인 도시로 부각시켰다. (180쪽)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파리가 근대성의 수도로 떠올랐을까 하는 것으로 내용이 이어지면서 파리라는 도시의 역사로 이어진다. 왜 막연히 파리 하면 로마나 피렌체에 비해 더 근대적인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한번도 역사적으로 캐물어 본 적이 없었는데 첫 시작부터 눈이 번쩍했다.

유럽에서 가장 '예쁜' 도시로서 빈을 선정했는데 빈에 있으면 마치 화려한 장식장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가 한참 이어진다. 역사 배경 지식이 보잘 것 없는 나로서 한번 읽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진 않았지만 이런 배경 지식 없이 여기 저기 명소만 돌아다닌다면 그것이 과연 내가 희망하는 여행일까, 그건 아닐거라 확신하게 해주었다.

빈이 화려한 장식장이라면 잘츠부르크는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룬 도시라고 했다. 그림과 같은 도시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라고.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 때문에 우리 국민에게는 너무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로만 떠올라 유감이라는 부다페스트 편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실었다. 헝가리에서 지낸 기간이 가장 오래이니 아마도 가장 친숙한 도시였을 것이다.

저자가 처음 헝가리에 간 것이 2008년이고 이 책이 나온 것이 2011년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이상 된 여행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도록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하게 쓰여져 있다.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스페인 한 나라에서도 세비야, 똘레도, 그라나다 이 세 도시 각각에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여 꼼꼼하게 기록했다.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겠지만 한 도시만 해도 이러한데, 한번 여행가면 붙어있는 몇개국을 되도록 많이 방문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과연 가능할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저자의 여행 기록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에피소드나 사진 중심으로 지면을 채운 책이 아니라서 어쩌면 요즘 쏟아져나오는 여행기와 좀 달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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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2-1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여행이 부담스러운 제가 읽으면 외국 여행에 끌릴지 모르겠네요.
가는 곳마다 꼼꼼한 기록한 필수겠고 거기에 유머와 버무리면 좋을 듯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교과서 느낌. 좋네요.
여행, 에는 확실히 셀렘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hnine 2020-02-13 12:38   좋아요 0 | URL
모범생같은 여행기록은 맞는데 유머가 두드러지진 않아요 ^^
그래도 내용 부실하면서 유머를 내세우는 책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국 여행뿐 아니라 모든 여행을 일단 설렘보다는 부담으로 생각하는건 집순이인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런데 열에 열, 다녀오고 나면 괜히 갔다고 생각되는 여행은 없더라고요. 보람도 있고 뿌듯하기도 하고 생각에 새바람도 들어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