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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2 -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평점 :
얼마전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다섯 권 중 순서를 무시하고 르네상스 시기 미술을 담고 있는 5권을 읽고 났는데 거기서 그칠 수가 없었다. 르네상스 미술이 그리스 로마 미술을 계승했으니 바로 그 시기의 미술에 대한 내용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2권을 택했다.
<난처한 미술이야기 2>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셜리가 한 말이다. 여기서 그리스는 셜리가 살던 동시대 그리스가 아닌, 수천 년도 거슬러 올라간 기원전 그리스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 문화는 어떻게 수천년을 뛰어넘어서까지 법, 문학, 종교, 예술 등 유럽의 정신과 물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등 고대 문명이 시작된 곳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이었고 기원전 그리스 지역은 문명 세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변방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그리스 문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 곳이 문명의 시작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스가 유럽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동방의 문명을 받아들이기 쉬웠다는, 지정학적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되었다. 그 증거가 되는 여러 조각과 건축물을 제시하여 이것이 저자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방의 문명이 미노아, 미케네 문명을 거쳐 그리스 문명으로 탄생한 것이 기원전 800년 무렵이다.
그리스는 어떤 식으로 서양 문명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미술에 대해 말해보자면 서양미술사는 그리스 미술을 재해석해 온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문명의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서양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새롭게 해석해 나갔다. 예를 들어 15-16세기 유럽에는 르네상스라는 미술 흐름이 있었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부활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부활시킨다는 것인가. 바로 고전의 부활을 뜻하는데 그 '고전'이 바로 그리스 미술이다. (104쪽 요약)
고전을 되살리자는 주의는 이후에도 신고전주의로 나타나기도 했고 19세기, 20세기에도 고전주의는 늘 존재해왔다. 보통 서양 하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오히려 미술을 보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보수가 확실해야 진보도 나오는 거라는 말은 새롭게 기억될 것 같다. 깰게 있어야 그걸 기준으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미술은 시대구분상 기원전 776년 올림픽의 시작,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나온 때를 기하학적 문양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기점으로 삼으며,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문양의 고졸기를 거쳐 그리스 문명의 정점을 이루는 고전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는 시대인 헬레니즘기로 구분한다. 기원후로 넘어와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가 그리스를 패배시키고 393년 로마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리스 문명 시대의 끝으로 본다.
박물관에 가서 미라가 나오면 이집트 미술이라는 것을 알수 있듯이 그리스 전시실에 이르렀음을 알수 있게 해주는 조각으로 쿠로스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쿠로스'라는 명칭이 낯설었다. 그리스 예술품 중 가장 오래된 남성 누드 입상 중 하나로 남자 또는 청년이라는 뜻에서 쿠로스라고 부른다고 하니 기억해놓아야겠다.
번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리스와 이집트의 미술을 비교하며 그리스가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해 저자는 아쉬움을 나타내며, 아마도 그 유명한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저서에서 그리스의 우월성을 주장해놓은 것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1950년대 나온 책임에도 아직 그것을 능가하는 책이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책이다보니 곰브리치가 '위대한 각성'이라고 지칭한 그리스 미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용하는데, 그리스 미술이 위대한 각성이라면 그 이전 시기는 모두 '잠'에 해당하는 시기인가 해서 씁쓸하다고 했다.
그리스를 정복한 후 그리스 문화를 없애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계승, 전파하려고 노력했던 로마 덕분에 그리스라는 나라는 번성하지 못했어도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 주의의 확산을 타고 더 멀리 보급되고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연결되어 지금까지 그리스·로마 문명이라 붙여 일컫고 있다.
18세기에도 유럽 고관 대작 자제들을 위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그랜드투어라는 이탈리아 여행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랜드 투어를 떠났던 유럽 귀족 자제들은 로마를 다녀온 후에도 그리스 로마 문화에 매료되어 자기 나라의 건축, 미술 등에 반영시킨 것은 자연스런 일이겠다. 예를 들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건축은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독일 레겐스부르크에도, 미국의 링컨기념관, 우리 나라 덕수궁 석조전에서 까지 발견된다.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로마인들은 예술 작품도 실용적인 용도로 제작하기 좋아했으며 그중에서도 조각은 대부분 왕족, 귀족 가문의 위엄을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져서 로마 황제들의 카리스마를 위한 로마 황제 조각이 많이 만들어졌다. 로마의 건축, 도로, 하수도는 지금까지도 남아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공학적으로 우수하였고 비트루비우스는 건축 원리를 집대성하고 체계적으로 완성하여 <건축 10서>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을 복원할 때 이 책을 참조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꼼꼼하게 쓰여져있는지 짐작이 간다.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성격은 현세적 가치관에 치우쳐져 내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리하여 사후 세계와 관련된 문화를 따로 발달시키지 못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로 나중에 기독교가 제시한 종교적인 답에 쉽게 굴복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조그마한 고장에서 탄생한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된 이후 탄압 속에서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번져나가 마침내 로마제국의 국교로 지정되기에 이르니 말이다.
이렇게 저자는 다음 권으로 자연스럽게 내용을 연결시키며 2권을 맺는다.
다음 권의 내용은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았다 이다.
안 읽어볼 수 없게 만든다.
